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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19. 2015

야생 고양이#33 <브라질>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서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야영: 일야 데 그란데 섬 Illa de grande

텐트를 하나 구매했다. 커다란 섬이라는 단순한 이름을 가진 그곳에 ‘정글’ 속 캠핑을 꿈꾼다. 그러나 기대와 좀 달리 너른 야생이나 정글, 텅 빈 모래사장이 아니라  상업화된 관광 목적의 수 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태양을 즐기는 많은 관광객으로 해변은 분주하다. 해변가에서 야영을 해야겠다는 심산이 가득 찬다. 더운 오후 4시쯤 섬에 도착해서 이리 저리 섬을 탐색한 후 해변가에 앉는다. 해가 질 무렵 사람들은  하나둘씩 숙소와 상점이 많은 곳을 향하고, 나는 인적이 드문 해변가 뒤쪽 수풀에 텐트를 친다.


마침내 캄캄한 밤이 찾아오고 아무도 없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보름달 아래 춤을 춘다. 혼자서 추는 춤은 몇 달간 방안에서만 이루어졌다. 모두가 가고 텅 빈 바다는 마치 내 것인 것만 같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다. 부드러운 모래가 밟히고 열기 식은 공기와 끝없는 바다의 움직임 아래 보름달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음악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2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한 경비원이 나를 찾아온다. 그는 내 텐트에 한번 그리고 내 얼굴에 한번 정면으로 손전등을 비춘다. 내가 웃으며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 그가 들고 있던 방망이로 내 파란 텐트를 내려치며 경찰을 부르겠다며 윽박지른다. 또 내 갈 곳을 알지 못하고 그 밤, 기쁨에 찼던 자유를 정리한다. 그는 빨리 움직이라며 독촉하고 나는 짐을 싸다 말고 그를 흘겨본다. “Nao falo Portugesh!” "난 포르투갈 어를 할 줄 몰라!" 고 ‘꽥’ 소리 지른다. 이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은 너무 갑작스럽고 또 무섭게 다가왔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애처로웠다. 짐을 와구 와구 싸서 왔던 길을 돌아나간다. 작은 마을이니 나가면 뭐라도 있겠지만 작정하고 캠핑하겠다는 심산이 무산되어 당혹스럽다. 낭만은 지극히 얄궂은 현실적 이유로 산산이 부서지기 쉽다.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 침묵이 감돈다. 그는 돌 뿌리에 자꾸 걸려 허적 대는 나에게 빛을 비춰주기도 하고 마지막엔 어떤 간판을 비추며 설명한다. 그 곳은 나름 커다란 공원부지였기 때문에 캠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Chao 안녕”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공원에서 결국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텐트를 다시 치고 컴컴한 밤 피곤한 몸을 뉘어 하룻밤을 지새운다. 보름달이 등불 같은 밤이다. 모래가 온몸에  서걱이고 기울어진 바닥에 피가  여기저기로 쏠리지만 야영의 심산 때문에 그래야 했던 밤이다.


리브레“Libre”(자유)

커다란 섬에서 지내는 며칠째 되던 날 저녁 산책 중 5명의 히피 무리를 만났다. 그들은 끌고 다니는 개인용 작은 수레 위에 자전거 바퀴와 옷가지가 들어있는 가방,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싣고 다닌다. 몇몇은 다 낡아빠진 가방을 들고 드래드락 머리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해변을 거닐며 자신들이 요리를 할 곳을  찾아다닌다고 말한다. 그들은 해변가 근처에서 아무데서나 자려 한다. 살 집이란 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들은 오랫동안 씻지 못했다. 머리가 긴 10대 소년은 그날 저녁 어느 인적이 드문 바(bar) 빈 테이블에 앉아 틀어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 음날 배를 타고 섬을 나가기 위해 기다리고 는 그들을 다시 만난다.


스페인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즐겁게 대화한다. 14살, 39살의 페루인 아들과 아버지 마이클 그리고 20대 초반 브라질 여성과 아르헨티나 남성 정도로 구성된 그룹이다. 그들은 남미를 돌아 브라질을 여행하고 있다.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대화지만 빛나는 눈에서 그들의 여행과 삶에 대한 자신감과 “Libre”(자유!) “Vamos(같이 가자)”라는 말에 나는 그대로 캠핑 장에 있는 짐을 싸서 항구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여행이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 그저 직감이 나에게 속삭이는 그대로 그들을 따라가고자 한다. 그들의 방랑에 가까운 그 일상 사이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만나는 지 궁금했기 때문에 적절한 작별인사도 못한 채 섬을 떠나는 배에 승선한다.


그들은  지난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배로 이동하는 2시간 내내 모두 잠이 든다. 깨어있는 아르헨티나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드래드락 머리를 꼰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육지에 다다른다. 주섬주섬 느리게 우리는 이동한다. 내리자마자 마이클 아저씨는 짧은 영어로 나에게 “Hungry”  배고파. 라는 말을 한다. 근데 그 말이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다. “money, money 돈”  “help도와줘"  “contribution기부”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동행자로서의 균형을 잃는다. 잠에서 깨어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은 안 되는 영어와 느린 스페인어 발음으로 내게 말한다. 나는 그 단어들을 대략 추측할 수 있지만, 그저 못 알아듣고 싶다. 함께 동행하고 자유를 보기 위해 이런 관계를 장기적으로 감당할 자신이 서지 않는다. 또 내가 순진했던 건가. 자본에서 자유로워져야 진짜 자유로운 관계일 수 있는 그 씁쓸함을 다시 만난다. 잠시 자유로운 영혼들의 판타지를 꿈꾸었지만 현실적이고 얄궂은 생계의 문제들이 모든 것으로부터 깨어나게 한다. 매일 씻을 수 있고 대충이나마 빨래를 할 수 있는 여유조차 그들에게 없었던  이다. 아마 내  지난날의 경험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성급하게 겁을 먹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브라질에 와서는 계속 엇갈리는 인연을 만났다. 기쁘고 힘차게 하이 파이브를 하려는 데 두 손은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고 씁쓸하게 각자의 공허를 스쳐간다. 가진 것 중에 가장 필요하지 않은 것, 그러면서도 그들의 여정에 쓸모 있을만한 물건과 그들이 바라던, 지폐 몇 장을 꾸겨 넣어 어린 소년에게 건네주고 그 무리를 조용히 떠난다. 그들의 지갑이 되어줄 만큼 넉넉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그들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유연하지 못했다. 히피 친구가 동냥하는 순간 나는 떠나야 했다. 마이클 아저씨가 준 팔찌만이 내게 남아있어 그 만남의 증거가 되어준다.


맑은 민 물 속에 꾸물거리는 검은색은 검은 물고기가 아니다. 그것은 모래와 색이 비슷한 물고기의 그림자의 움직임이었다. 내가 보는 것은 명백해 보이는 그림자인 걸까 아니면 슬쩍 감추어진 실체인 걸까.



여정의 끝까지

계속되는 엇갈린 인연들로 인해 브라질 여행은 정말 빠르게 이동하는 날의 연속이다. 기억이 너무 짧고 단편적이어서 그 무엇이 나의 뇌리에 남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무엇에 홀린 듯 계속 움직이고 있다. 18kg 배낭과 땀과 함께 걷는다. 고생스러워도 젊다는 패기로 이겨낼 힘이 있다면, 각종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이라면, 이런 여정을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다.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이 세레머니가 끝이 나면 칠흑 같은 밤이 올 것이다. 오늘은 또 무엇을 보려나, 내일은 또 어디로 향하려나. 만들어 내는 소비와 소모들을 최소로 줄이고 가장 가벼운 상태이고 싶다. 있었던 듯 없었던 듯. 여정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인다.


브라질 쪽에서 이과수 폭포를 바라보고 오랜만에 장기 여행을 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의 끝물에 서 있고 이제 돌아갈 한국을 생각하고 있다. 신나게 보고 즐기고 여행을 했고, 배우고 느끼고 보람차게 돌아 간다지만 아직 명확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귀국을 꿈꾼다. 그중 한 명은 내게 여행을 언제까지 할 거냐 묻자, 나는 가진 것이 바닥 날 때까지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장기 여행의 말미에 있던 사람은 나에게 말한다.

“그래도 정작 진짜 거지가 되면 슬퍼요.”



The more you try to answer questions

and the more you make discoveries,

the more questions you are goingto have.

더 많은 질문에 대답하려 노력할수록,

더 많은 발견을 수록,

더 많은 질문을 가지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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