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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21. 2015

야생 고양이 #36  <아르헨티나> 흐름따라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히치 하이킹 Hitchhiking

엘 칼라파테 El Calafate를 떠나는 날 만난 캠핑 족 친구의 말에 히치 하이킹이 갑작스레 가슴을 두드린다. 무작정 지도를 들고 마을의 끝, 하나의 도로가 시작되는 곳까지 있는 아침부터 걷는다. 히치 하이킹을 하려 엘 칼라파테를 떠나는 톨게이트에 다다랐을 때 엘 찰튼 El Chalten으로 향하기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3명의 여행자를 만난다. 미국, 덴마크, 이탈리아 사람이 빵 조각 몇 개를 두고 그곳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행운을 기다리고 있다. 안데스 산맥을 낀 여행이 시작된다. 각각 낭만을  찾아다니는 그들은 텐트는 기본이고 각종 장비들로 무장해 어디 나가도 죽지 않게 준비된 여행자들이다. 나는 마지막 합류하여 가방을 내려둔다. 우리는 책을 읽고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히치 하이킹을 시도한다.


4시간을 기다렸지만 원하는 차량을 찾지(비수기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향하지 않는다.) 못하고 히치 하이킹을 포기했다.



포니 테일 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이탈리아인 스테파노Stefano는 자기 나라를 떠나 6개월간 캐나다에서 일을 하고, 1년간 멕시코에서부터 남쪽 끝 파타고니아(칠레)까지 중남미를 여행하다가 6개월 칠레 호스텔에서 일을 한 뒤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수 많은 여행자들, 현지인들, 문화와 경험들을 쌓아오면서 남미 대륙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그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히치 하이킹과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식 혹은 자신만의 요리를 해주고 자연과 젊음을 즐기는 그는 이제는 이런 경험들에 보태어 자기만의 여행사 같은 것을 차릴 궁리를 하면서 까르테라 오스트랄 Carretera Austral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까르테라 오스트랄은 파타고니아 지역 중 하나로 안데스 산맥 남쪽을 중심으로 이어진 칠레 쪽 코스인데, 엘 찰튼이나 엘 칼라파테 등 주요 유명 관광명소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라 교통편도 불편하고 정보도 매우 적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정말 아름다운 파타고니아 지역이다. (그를 만나기 전엔 나는 그곳을 알지 못했다.)


엘 찰튼 El Chalten

동화 속 풍경 같은 산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받는다. 험한 산길을 올라 다다랐을 때 그 산의 이미지는 우리의 땀과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오르는 길 사이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은 기묘하고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은 서늘하고 태양은 뜨겁고 얼음 녹는 물 흐르는 소리는 한창이다. 숲과 돌 구르는 소리와 시내, 바람과 풀 냄새와 나무의 진실.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어디서 쯤 바닥이 날 까. 만나고 헤어질 뿐이다. 다만 바람처럼 왔다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음을, 같지만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조금씩 느낄 수 있다. 그 흐르는 빙하는 어디로 가는 지 그 물살에 자신을 다 던진다. 샌드위치 2개를 먹고 쿠키를 들이킨 후 잠이 든다. 햇살은 따사로운 자비로운 겨울이다.  



나무

언젠가부터 식물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작은 떡잎은 어느새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내고 물을 찾아 더 깊이 태양을 향해 더 높이 뻗어나간다. 식물은 제자리에서 투쟁하고 즐기며 솟아난다. 그 모든 자연의 치열함 속에서 보장된 흙도 물도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찾아 만들어 나간다. 엘 찰튼의 신비로운 산행을 하면서 그 구불구불하고 못생기고 시커먼 나무들 사이에서 내 것을 찾고 있다. 나의 나무를 찾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수많은 꼬부라지고 흔들리고 작고 크고 아름답고 못생긴 나무들 사이에서, 그 수많은 꿈틀거림 사이에서, 나의 나무를  찾아다닌다. 그 역사가 자신의 몸으로 외적으로 보이는 그 친밀하고도 낯선 ‘내 인생을 담은 나무’를 만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나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 나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뿌리부터, 대지를 감싼 보이지 않는 영역과 지난 과거와 현재와 또 가능성까지 모든 인생의 족적이 외면적으로 반영된 나무를  찾아다닌다. 어떻게 생긴 놈일까.



Go with the flow 흐름에 몸을 맡겨

어떤 명확한 여행의 방향도 없이 그저 심장이 뛰는 쪽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스테파노의 카르테르 오스트랄 여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를 지나 칠레Chile로 간다.


매일 반복되는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을 하고 싶다. 피부가 갈라지고 냄새가 나도 어쩌겠나,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외적 가치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많은 여행자를 만난다. 이렇게 세계일주를 하는 청년들이 넘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은 건가. 우리는 어떤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버스 46석이 가득 찬다. 먼 길을 달린다. 마지막 티켓, 화장실 바로 옆 좌석을 얻는다. 여행 길은 또 길게도 이어지고 있다. 북쪽을 향해, 적도를 향해, 조금 더 따뜻한 곳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배터리가 끊겨 멈춘 음악에 대한 아쉬움과 화장실 냄새, 올라오는 먼지들이 뒤섞이는 때에 운전기사가 드넓은 황야에서 교대한다. 차창 밖 반복되는 풍경이 꿈에 나오지는 않는다. 이곳이 캘리포니아이든 아프리카이든 중동이든 아르헨티나이든 구분이라는 것은 모호해진다. 모두는 지쳐 잠에 빠질 때, 나도 그저 유행과 시대에 동조해 떠난 여행자인 것인가 생각한다. 삶에 대책이 없어서 도망쳐 나온걸까. 모두가 이동을 위해 숨을 죽이는 시간이다. 행동은 최소화되고 생각의 고리와 잠의 세계가 혼재된 이미지들 사이에지 나온 시간의 기억을 던진다.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의 환상을 부풀린다. 새벽부터 달린 버스는 저녁 무렵 국경지대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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