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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Dec 02. 2015

야생 고양이 #42 <볼리비아> 파차마마의 땅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파차마마의 땅

라파즈 Lapaz

볼리비아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라파즈Lapaz로 향한다. 높은 곳에 몰려 사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 주위는 안데스 산맥 절경이 펼쳐져있다. 분지형 도시 가운데에는 상업단지들이 오밀조밀 조성되어 있다.


갈주황 벽돌집들이 조밀한 해발 4000m의 땅 위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것은 또 하나의 작품 감상이다. 산 너머로 해가 타고 오르면 분지 아래 도시가 하나씩 아침을 입는다. 고지대의 태양이 뜨겁게 떠오른다. 빼곡히 살림살이가 쌓여있는 이곳을 안데스 산맥, 파차마마(대자연 Mother Earth:종교는 아니다)가 지켜준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파차마마를 존중해서 술을 마실 때 조차도 마시기 전 조금은 땅 바닥에 흘리며 그녀와 함께 마신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공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들으며 라파즈의 휴일에 참여한다. 마이클 잭슨 음악에 춤을 추는 광장의 아이들과 그릇을 내어주는 요거트 상점 아저씨, 사랑하고 노래하고 담소를 나누는 어려울  없는 휴식시간이다. 여기도 한류 열풍이 한창이다.

젊은이들은 타문화에 개방적인 반면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강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고수한다. 때로 보수적이고 타 문화 배척주의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인근 국에 비해 강렬하고 독특한 인디오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수 많은 시장, 광장, 유적과 문화적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골목골목, 같은 것이 하나 없는 라파즈의 매력에 흠뻑 젖는다. 그들의 삶의 쉼표만큼이나 구구석 광장과 공원이 많다. 중년층 여성들은 시장에 나와 식료품 등 장사를 하고 얼룩말 옷을 입은 청년들이 차 길을 정리해준다. 수 많은 시장 파라솔 속 귀여운 아이들, 광장의 조각상과 남미 특유의 느긋함이 섞여 있다. 지나가며 웃어줄 수 있는 여유와 음악이 있는 라파즈의 가을이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실비, 발렌틴과 다니엘라는 아마존을 구경하기 위해서 루레나바퀴 Rurrenabaque로 투어를 하러 떠나고, 나는 다시 혼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태양(생각)의 섬 Isla de Sol

티티카카 Titicaca 호수는 남미 대륙에서 가장 넓은 호수이고 그 위에 있는 섬 중 하나가 태양의 섬이다. 하얀 돌, 태양의 표면 같은 마블링과 작은 돌 하나하나 그리고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 푸른 티티카카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호수가 없었으면 그저 산 지형이었을 텐데 호수가 있어 그냥 보면 이곳의 높이를 가늠할 수없다. 멀리 안데스 설산이 주욱 펼쳐지면 입이 어진다.


조금만 올라도 헐떡일 만큼 체력도 안 좋고 지대도 높다. 더 없이 추운 방에서 이불 탑을 쌓고 높은 고도 위 밤을 지새운다. 브라질을 떠난 이후로 매일 이런 식이다. 태양의 섬 북쪽 마을에서 며칠, 남쪽 마을에서 며칠을 보내기로 한다. 탐험을 하겠단 심산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배를 타지 않고 무식하게 짐을 지고 걷는다.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늘 몇 가지 작은 짐을 지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악당을 물리치고 매일의 미션을 해낸다. 그 여정은 지리한 걸음이나 이동, 피곤과 찌질함, 외로움이라는 그 얄궂은 일상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늘 신나고 하면서도 재미있는 부분만 부각된다.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멋진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우정을 다지고 사랑한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쌓여온 다른 세계에 대한 환상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기루 같은 꿈을 좇아서 남쪽나라로 태양의 섬을 향한다. 내 쭈글쭈글하고 까맣게 탄 못난 손과 발, 건조하고 추운 날씨에 터진 피부, 까맣게 탄 얼굴, 관절염 같은 신체의 변화가 이제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내게 신호를 보내온다. 그래서 태양의 섬은 더 소중해진다.



남쪽 마을에 닿으면 희박한 공기를 마시며 사과 하나를 씹고 앉아 고산지대의 티티카카 호수 너머 석양을,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멋진 절경을 바라보며 산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던 화가 세잔Paul Cezanne을 생각하니 내 초스피드여행이 너무 가볍게만 느껴진다. 

양보다 질. 그런데 나는 떠날 때 희열을 느끼는 이상한 습성이 있어 문제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새로움으로 그 공허함을 채우고 있나. 사과가 위장을 타고 하루가 넘어간다.


사과 하나 씹는 순간: 세잔을 생각하며

꽃이 피어나는 기쁨을 느리게 바라본 적이 없다.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제대로 책임진 적이 없다. 그저 떠나버리는 데에서 그 책임감을 숨겨왔다. 바람에 흔들리며 평생 한자리에서 살아온 것을 이해한 적이 없다.


세상을 돌고 돌아 모든 책임감에서 탈출하려 해왔고 그래서 그 무엇도 내 것처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해가 뜨고 지고 다시 자고 깬다고 해도 내게 바뀌는 것은 없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대로는 위험한 건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무책임을 이리저리 돌리고 가리며, 안고 가야 할 짐을 모른 체하고 있는 건가? 이제 지난 여행 길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물음이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여행을 하며 하룻밤 시간을 보낸 방 한켠, 구석진 곳에 돌 하나, 꽃 하나, 파리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던  지난밤 그 오묘하던 찰나가 나의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나무 기둥의 역사를 듣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주파수를 통해 희미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저 망상인지도 모른다.



쉼표를 찍고 석양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거리 조명과 집의 불빛이 별처럼 빛난다. 산 기운이 밤을 타고 차갑게 흐르면 조용하고 깊게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디선가 물줄기가 떨어지곤 볼리비아와 작별을 준비한다.


태양의 섬을 떠나오는 아침 배를 타면서 커다란 무지개를 본다. 무지개의 끝에 작은 섬이 떠 있다. 그 섬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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