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안개 낀 정글, 야자수와 습기와 열기, 그리고 싯푸른 정글이 나타난다.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인 보고타Bogota에 점점 가까워진다. 3일을 연속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에콰도르의 중심부까지 올라온다. 적도에 점점 가까워지고, 고도가 낮아지면서 한껏 추위가 누그러진다. 에콰도르는 자국 화폐가 거의 사라지고 미국 달러를 사용한다. 신기하게도 미국에서 보기 힘든 동전 1달러가 이곳에서 더 많이 유통되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에 있던 사진 한 장 미사왈리“Missahualli". 내가 상상하던 아마존의 강줄기 이미지를 보고 별 정보 없이 그대로 짐을 싼다. 이과수 폭포 이후로 열대림의 에너지를 마주 한지가 오래다. 고지대에서 다시 저지대 380m까지 아마존 정글을 맛보러 무작정 떠난다.
그곳에서 운 좋게 롯지를 찾고 다시 캠핑생활이 시작된다. 이제 열대 우림이 펼쳐진 꽤나 더운 정글에 온 것이다. 낮에는 뜨거운 열기와 우기로 인해 잦은 소나기가 범벅이다. 놀랍게도 그 넘칠 것만 같은 빗줄기는 그 땅에 홍수를 만들지 못하고 식물들의 에너지로 변환되거나 아마존 강물로 흘러간다. 엄청난 흡수력을 가진 정글의 식물들이 사는 곳이다. 밤이 되면 수 많은 벌레 우는 소리로 인해 정글은 생명력으로 가득 찬다.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에너지가 풍겨온다. 소낙비가 내리면 학교 근처 처마에 몸을 숨기고 비를 바라본다. 푸른 생명들이 풀 내음을 풍기며 일어난다. 감수성이 사라지는 때에 만나는 신비의 순간은 단순히 과거의 경험에 빗대어 '그 전에도 있었던 순간'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싱그러움이 펼쳐지는 순간을 예민하게 느낄 때에는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경험으로 기억된다. 바나나 나무들이 흔들리고 잔디가 가득한 학교 운동장에 소낙비가 쏟아지고 난 후 이내 맑아진 하늘에 후각이 행복해진다. 잔디 운동장 작은 웅덩이들 사이로 아이들이 다시 뛰어다닌다.
체험적으로 원하는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직감적으로 여행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들은 그렇게 되어야 할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유유히 흘러가는 아마존 상류의 강줄기와 고온 다습한 기후, 열대 우림의 에너지,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롯지 뒤 숨겨진 호수에서 생명 에너지가 팔딱거린다. 원숭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신비한 새들의 울음이 아침을 깨운다. 우연찮게 작은 나무 배를 타고(카누 배 아저씨와 만났다. 이 만남은 이 첫 방문에서만 이루어졌는데 그 이후 여러 차례의 방문에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섬이 두 개 있는 작은 호수를 한 바퀴 돈다. 오랫동안 상상하던 아마존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표현해낸 공간이 펼쳐진다. 물에 비친 싱싱한 푸르른 열대우림 정글이 무성하고 야생동물들이 '쉬익 쉬익' 소리를 낸다.
그곳은 머무른 롯지와 가까워서 미사왈리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 일찍 그리고 밤에 가서 그곳의 동태를 조용히 살폈다. 까마귀가 내려 앉는 보트 위, 신비로운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미미한 하나의 동물이 된다.
조용할 틈 없는 수많은 소리와 에너지 그 모두가 아침을 깨우며 노래한다. 그날 아침 또 마찬가지로 그 호수에 가서 정글을 바라본다. 배 주인 아저씨는 이 작은 호수에 오지 않고, 푸른 카누 배 하나만 거기 있다. 타고 싶다. 모든 게 거기 있는데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 한 번도 혼자 배를 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방향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혹시나 배가 뒤집어져 무슨 일이라도 난다면, 이곳은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는 외딴 곳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노를 잡고 배에 올라탄다. 그 긴장감, 두려움의 순간, 혼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나를 뒤덮는다. 막상 호수 저편에 가다가도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 하지만 분명히 이 배가 좀 더 정글과 나를 단단히 엮어준다. 노를 저어 정글로 다가선다. 아, 정말 야생적이지 못하는구나. 모험에 대한 두근대는 심장으로 정글을 바라보지만 배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더 크게 지배한다. 배를 돌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15m도 못 가서 다시 돌아온다. 혼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모험의 긴장감은 더 강렬하다. 긴장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계속 안전함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사왈리 근방에 있는 마을을 헤매며 무작정 걷기도 하고 아무 버스를 잡아 타고 가다가 종점에서 보트를 타고 다른 마을을 구경하다가 돌아와 또 걷는다. 그러다 정글 속에 숨겨진 롯지(통나무집 숙소)를 발견한다. 아무도 찾지 않아 이제는 버려져 방치된 그곳에 호기심이 생겨 들어가 본다. 대부분의 아마존 정글 관광 여행에서 추천하는 것은 좀 멀리 떨어진 사치스러운 롯지에 들어가 정글을 즐기는 식인데, 이 롯지 탐험은 내 나름대로의 정글 관찰 시도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지나다닌 길이 있다. 그 깊은 정글을 둘러보기에 높은 곳에서 볼 관람대도 있는데 못은 녹이 슬어 있고 나무는 다 썩은 듯 아슬아슬하다. 나무로 된 관람대에 올라가보려 두 계단 올라가니 3m 전체가 와장창 부서지고 만다. 밤이었으면 너무나 무서웠을 정글 숲 속. 높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하늘이 제대로 다 보이지 않는다. 길을 따라 깊이 들어가니 아마존 강과 다시 만난다. 그곳은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강 건너편 정글이 탁 트여 보인다. 대자연은 황홀하다. 버려진 롯지는 2층 건물로 여러 동이 있고 적어도 1년~2년 정도는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다.
미사왈리의 정글은 사람보다 자연의 영향력이 더 강렬하게 펼쳐져 있다. 강렬한 빗줄기와 뜨거운 태양의 열기, 끊임없이 유유히 흐르는 저 아마존 상류 물줄기가 지구 허파의 단편을 드러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