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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Dec 12. 2015

야생 고양이 #48 <콜롬비아> 마지막, 종착지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남미 종착지: 콜롬비아 Colombia


마지막 여정

한국에 가면 비싸서 못 먹을 망고를 우적우적 씹으며 살렌토 Salento를 걷는다. 비가 내린다.


나와 함께 여정을 한 초록 배낭, 네팔에서 산 온갖 국기들, 2원짜리 두바이산 파란색 텐트, 인도산 목욕용품 팩, 남쪽 끝 우수아이아 가방, 스와질랜드에서 받은 선크림, 칠레에서 산 칫솔, 에콰도르 흰색 쪼리 신발, 볼리비아 마지막 구매 품 복대, 오타발로의 펜, 페루의 천들, 브라질 티셔츠. 여행이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마지막 정글을 바라보고, 녹색 땅에서 20-30마리의 콘돌의 비행을 감상한다. 여행이 끝나고 있구나. 초록 동산이 올록볼록 펼쳐진 곳, 살렌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쉼과 생각으로 보낸다. 야자수와 정글이 펼쳐진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팔딱거리는 내 심장을 들을 수 있고, 그 추상적인 것을 찾아 헤매던 자신에게 이제 그 상상의 곳이 더 먼곳이 아닌 바로 이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미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 막연한 어떤 분위기, 어떤 행복이라는 실질적이지 않은 상상이 나를 움직이는 동기가 되었지만, 그 뜬구름 혹은 무지개 같은 것들은 손에 잡힐 듯 잡을 수 없었고 그래서 늘 한 켠에 불만족은 해소되지 않았다.


해변에 수 많은 모래들 중에 어느 곳을 선택해 앉아 자신의 풍경으로 만드는 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무지개를 찾아다니지만 또 한편으로 스스로 무지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무지개가 되는 법, 정글이 되는 법, 원하는 그곳을 바로 여기서 만들어 행복할 수 있는 주체적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다만 새 장안에서 안락한 삶에 싫증 난다. 그저 하루 일을 하면 먹고 자는 것이 보장된, 길들여진 말의 자유가 박탈된 삶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괜찮은 걸까.


보고타 Bogota를 향하기 전 살렌토에서 마지막 걸음을 옮긴다. 참 무식하게도 작은 마을 살렌토에서 큰 마을 아르메니아 Armenia까지 버스를 안 타고 걸어가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 많은 1년의 짐을 매고 굳이 걷는다. 자연이 있고 건강이 있으니 생각의 고리를 풀어내며 걸어야겠다. 정오의 식사를 마치고 짐을 지고 산을 오르고 내린다. 콘돌이 날아다닌다. 거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저 주저하지 않는 비행의 곡선이 아름답다.

“날다!”


옛 시절 히피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 콜롬비아 가족의 집을 방문한다. 그들은 이상한 깡통에 커피를 끓이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던 나에게 나누어 다.


바나나 나무와 대나무 사이에 계곡이 흐른다. 콜롬비아 커피, 인도 만다라천, 70년대 음악과 몇 가지 초상화, 그가 만든 액세서리들, 가지런한 옷, 농기구가 있는 곳. 13살 된 아들과 부인과 함께 산다. 그들은 온갖 버려진 옷과 천들을 가득 쌓아두고 집 앞에 창고에서 닭을 키우고, 계곡에서 빨래를 하고 자신의 텃밭을 꾸리며 살고 있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바나나 나무 무성한 그들의 영역은 다른 집들과 꽤 동떨어져 있다. 아저씨의 방은 멋진 그림과 예술작업이 쌓여있고 그의 또 다른 창고에는 여러 가지 가정용/농작용 기구들이 있다. 집과 마당은 어수선하지만 자신만의 질서는 있다. 그들 아무렇지 않은 소탈함과 유쾌함, 자기 멋대로의 삶의 방식 같은 것이 멋스럽다.


그는 한 때는 더 멋진 히피였지만, 다시 먹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작은 족쇄가 되어 젊을 때만큼의 자유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며 살 수 없음에 안타까워한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젊은 시절의 예술혼, 조금은 초라해 보였던 히피 아저씨(그러나 여전한 정신세계)는 과거를 붙들고 다시 쟁기로 밭을 일군다. 흔들리는 생존 경쟁의 현실과 자유 추구를 향한 열망, 그 중간 지점을 본다.


나는 그의 아들에게 와카치나Huacachina에서 얻은 라스타 파리(빨강, 노랑, 초록)팔찌와 브라질 티셔츠를 건네며 그들의 삶을 조용히 응원한다.


길고 험하며 힘겨웠던 4시간의 도보 이동 끝에 아르메니아에 도착하고 보고타로 향하는 밤 버스 표를 끊는다. 그저 정글에 며칠 있었다고 조금 큰 도시에 오니 차 소음에 힘겹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늘도 텅스텐 등 아래 앉아 저녁시간을 보낸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또 밤을 걷는다. 우연히 찾은 판자촌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사이 중에서도 푹 꺼진 지형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대부분 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곳인데 또 사뭇 다른 분위기가 풍겨 난다.


꽤 많은 가구가 살고 있는 그곳의 사생활은 거의 보호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노출되어 있다. 더운 밤 바깥에 나와 앉은 콜롬비안 어린이들과 대화를 한다. 호기심 강한 아이들은 한글에 강한 흥미를 느끼고는 각자의 손에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난리다. 그에 따라 아이들의 어머니도 나에게 호의를 표시하고 내 주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


우연하고 사심 없는 만남들, 라우라, 캘리, 살로메, 에너지가 넘치는 밤은 웃음 꽃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는 것은 중요한가? 아마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 만남의 순간에 진심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는다.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났다가 그렇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을 연습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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