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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Mar 03. 2021

육아휴직 정리와 복직 준비-1 ; 끝과 시작 2

2021.3.1(월) 3월의 첫 밤


4시 50분 알람이 울렸다. 안방에서 아내가 일어났다. 일어나야지 하면서 누워있었다. 마음이 천근이다. 몸을 뒤척이다 스마트폰을 켜고 이런저런 영상을 보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삼일절에 호미곶에서 일출을 보려던 계획을 전날 밤에 접었다. 아이들과 새 출발을 향한 각오를 다지고 싶었는데 아쉽다.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려 호미반도 둘레길을 다시 걷고 싶었는데, 날씨가 돕지 않는구나. 몇 가지 잡스러운 영상을 보고는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나인해빗 카페에는 새벽 기상을 알리는 진동이 부지런히 울린다. 오늘만큼은 움직이기 싫었다. 다시 잤다.


눈을 뜨니 8시, 평일이면 사무실에 출근하고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내일부터 나는 직장인이다. 육아휴직의 끝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


아이들도 내일 새 학기 등교다. 반을 확인하고 학교 홈페이지와 밴드에 계정을 만들고 수업 준비에 분주했다. 9시에 기획의 네 걸음 회원과 올해 진행할 프로젝트 협의 줌 미팅에 참석했다. 지난해 10주 과정에서 알게 된 반가운 얼굴을 다시 보니 좋았다. 각자의 삶에서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근황을 듣고 나도 복직을 알렸다. 한 시간 가량의 논의 끝에 올해 첫 프로젝트는 헌혈로 결정했다. 구체적인 기획은 매달 만나서 추진하기로 했다.


마지막 할 일은 집 청소다. 이제는 평일에 청소는 아내 몫이 된다.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정리하자. 집현전에 높이 쌓여있던 책들을 책꽂이에 놓고 창가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지난해 읽었던 책들은 고마운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점심을 먹고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톱 좀 깎아줄래?"

"응"

"당신 지난여름 봉숭아 물이 아직 남아있네. 오래간다."

"응 우리 추억이 사라지는 게 싫네... 올해도 봉숭아 물들이자."


마지막 날 가족의 모습을 남겨 놓고 싶었다.

글 쓰는 시니, 책 읽는 아내, 안방에 누워 책 읽는 차니, 줌 배경화면이 된 세계지도마저 고맙다.


필사를 하려 노트를 펼쳤다. 다른 글씨체가 한 페이지 보였다. 아내가 손 편지를 보낸 것이다. 얼마 만에 받아본 아내의 편지일까. 지난달 아내를 시작으로 아이들과 부모 형제에게 매일 한 통씩 손 편지를 썼다.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편지를 받고 아내가 보낸 답장이었다. 지난 1년간의 아내의 속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여보 오늘이 당신 휴직 마지막 날이에요. 1년간 가족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쉬는 동안에도 게으름 한번 부리지 않았던 당신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아이들과 웃고, 장난치던 모습도 참 고맙고요. 무언가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을 모며 '뭘 저렇게 열심히 할까? 지치지도 않을까?'라는 생각도 자주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준 덕분에 우리 가족이 따뜻한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어요."


반도 읽지 않았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회사 생활하면서 또 힘든 일이 생기겠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조금만 더 힘내 줘요!!. 항상 믿음직한 남편이라서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또 함께 새로운 길을 가봅시다. 항상 응원합니다. 사랑해요 준범 씨."


그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자. 어차피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맘껏 즐기자. 결혼 15년 만에 육아휴직을 하면서 비로소 가족의 사랑을 얻었다. 아이들도 아빠와의 시간에 무럭무럭 자랐고 아내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을 감사하고 있다. 결국엔 먼저 행동하고 삶에서 증명하면 가족도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시니차니는 쌔근쌔근 엄마품에서 잠들었다. 창가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지 못하고 있는 밤이 깊어간다. 아빠의 자리, 남편의 역할이 더해졌지만 이 삶을 누리지 못하고 떠난 형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 행복하리라.


이 눈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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