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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May 24. 2021

눈을 뜨니 아흔 살이 되었다

제1회 백백 백일장 시제

"당신의 83번째 글쓰기가 작품이 됩니다."


100일 동안 매일 한편씩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3:59:59까지 발행하고 카페에 인증을 합니다. 3월 2일부터 46명이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반환점을 돌면서 18명이나 탈락했습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100일 동안 여러 가지 상황이 글쓰기를 방해합니다. 100일 100장 글쓰기 프로젝트를 기획한 책과강연 이정훈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글쓰기를 해내는 사람이 책을 쓸 자격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을 준비하려고 저도 출사표를 던지고 참여했죠.


어제 83일째 글쓰기를 위해서 탈락했던 분들까지 모였습니다. 얼마 전에 기수장들과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죠. 바로 온라인 백일장입니다. 어릴 때 참석했던 글짓기 대회처럼 공통의 시제로 산문 한편을 완성하는 짜릿함과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매달 아이들과 자작시를 쓰며 <베란다 백일장>을 진행한 경험으로 동기들과 문학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이석현 작가님의 공대생의 심야서재(공심재)에서 진행했던 온라인 백일장 포맷도 참고했습니다. 돌아보니 지난 수년간 포항과 경주를 다니며 아이들과 참가했던 백일장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눈을 뜨니 아흔 살이 되었다"

여러 백일장에 참가했지만, 이런 특별한 시제는 처음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허를 찔렀지요. 시제를 받아 든 동기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릅니다. 같은 주제에서 어떤 참신한 작품이 나올까 기대를 하며, 글쓰기를 구상했습니다. 한 시간 집중해서 한편을 완성했습니다. 


26명이 작품을 제출했고, 참가자들이 서로의 작품을 읽고 심사를 했습니다. 많은 공감을 받은 이랑 작가님이 28점으로 장원을 했고, 민수정 작가와 전유정 작가님이 10점으로 2,3위를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한 상품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골랐습니다. 상을 받은 작가님, 상을 선물한 작가님 모두 결과보다 과정을 즐겼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사회까지 보게 되었네요. 한분씩 릴레이로 자기소개부터 백일장 소감과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나눴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글에만 집중하느라 바빴지만, 83일째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타인의 글을 읽고 감동받고 눈물도 흘리며 삶의 온기를 느끼게 되었네요. 


글쓰기는 독자를 위한 것이고 진정성을 담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멀리서 소재를 찾지 않고 흔하디 흔한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글은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입니다. 부족하나마 제 작품을 소개합니다.


  


제목: 눈을 뜨니 아흔 살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잘 계시나요?


막내 준범입니다. 어젯밤 오랜만에 금당실 꿈을 꾸었습니다. 건넛집 암탉이 울면서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돌담 너머로 빠알간 햇살이 비칩니다. 방두들에 모내기하는 날이라 새벽부터 논에 물을 대고 오셨죠. 어머니가 차린 밥상을 떨리는 손으로 한 그릇을 비워내셨습니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에게 여든다섯에 맞이한 벼농사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다리가 불편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어색해진 당신의 뒷모습을 따라 집을 나섰습니다. 가을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정미소는 낡고 녹이 슬었네요.



그 앞을 '털털털'거리며 낡은 경운기가 주인을 싣고 들판으로 나갑니다. 아버지의 오래된 자가용이 아직은 쓸만하다고 용을 쓰지만 제 걸음만큼 느리더군요.


아침햇살이 안개를 밀어냅니다. 붉은 태양이 대지에 온기를 뿌리며 생명을 깨웁니다. 잠에서 덜 깬 탓인지 저녁노을로 보였습니다. 늙은 농부의 출근길이 하루를 마친 퇴근길처럼...... 마치 삶의 뒤안길에 긴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지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 가는 경운기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새벽 들녘과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부르시던 풍년가가 아들의 귓가에 들려올 즈음......

아!

꿈에서 깼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그해 봄, 들판에서 찍은 사진은 당신이 농부로서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해도 풍년이 찾아왔습니다. 그 쌀로 지은 밥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찬찬히 꼭꼭 씹었습니다. 구수한 맛이 좋았지만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기 싫었답니다. 아버지의 맛이 그립네요. 이듬해 열두 마지기 토지를 영농조합에 위탁하셨고 자가용 경운기도 파셨죠. 


아버지의 다섯 자식들 중에 막내와 둘째 누이가 살아있습니다. 올해 제 나이가 아흔입니다. 아버지보다 한 해 더 살았네요. 어머니는 아흔 살 가을에 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둘째 누이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보고 행복하게 눈을 감으셨지요. 누이는 지난해 상수(上壽) 잔치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일한 손자인 시니와 차니도 60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니는 의사가 되어 미국에서 큰 병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슬하에 삼 남매로 동현, 정현, 하영입니다. 모두 미국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차니는 아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육사를 수석 졸업했고 지난해부터 개성에서 사단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섯 남매를 키우고, 첫째 아들 태수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우주선 파일럿이 되었습니다.


막내며느리도 난소암을 극복하고 건강합니다.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답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맞네요. 제가 글쓰기는 먼저 시작했지만 아내의 책 <가족의 쓸모>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저는 포항에서 15년을 살고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정년까지 근무하고 매일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책도 10권을 출간했습니다. 서울과 금당실을 오가며 아버지의 들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농사는 자동화가 되었고, 아버지가 보셨으면 세상이 참 살기 좋아졌다고 놀라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와 살았던 2021년이 무척 그립답니다.


꿈에서 깨어나 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릴 때는 농사 대신 공부로 성공하라고 성공봉(회초리)으로 정신을 일깨워주셨지요. 평생을 살고 보니 부모의 내리사랑만큼 귀한 것은 없었습니다. 거친 손을 꼬옥 잡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 온화하신 얼굴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버지의 음덕으로 우리도 부끄럽지 않은 명문가(名門家)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가르침을 새기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오늘, 2021년 사진에서 아버지를 만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2065년 5월 23일

막내 준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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