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님 Jun 15. 2024

커피 이야기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고백하자면 나는 원두가 예민한 식품이라 시시각각 상태가 변화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매일 오전 커피를 마시긴 하지만 맛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커피 문외한이었다. 책방 이전 오픈은 코앞으로 다가오는데 커피머신을 납품한 사장님께 한 시간가량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이 전부였으니 오븐 속에서 뜨거움을 견디는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걱정에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지고 있었다. 원두 선택부터 난제여서 프*츠 빈*라더스 등 유명한 원두를 몇 가지 받아 단골손님들에게 오픈 하루 전 벼락치기 시음회를 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어둠 속 한줄기 빛과 같은 손길, 밤가시마을 대표 커피 장인 카페 소비 사장님은 좋아하는 단골손님들이 겹친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뭐든 어물쩍 넘어가는 걸 좋아하는 내가 적당한 타협을 모르는, 예리한 미각과 솜씨를 가진 스승을 의도치 않게 만난 것이다. 이전 초기 생각할 일도 챙길 일도 많고 일을 크게 벌여 망할까 봐 달달 떨며 문을 여는데 소비 사장님은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곱실거리는 머리를 휘날리며 아침저녁으로 책방을 찾아와 주었다. 그리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실전 노하우를 하나하나 전수해 주셨다. 


사장님에게 배운 바로는 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위생, 둘째도 위생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그라인더와 머신, 제빙기를 수시로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야말로 고린내가 농축된 커피 마시게 되는 것! 한꺼번에 쏟아지는 설명에 뼛속부터 기계치인 나는 시작부터 머리가 딱딱 아프면서 백기를 들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건 어제의 내가 늘어놓은 피할 수 없는 길 하나뿐! 


그라인더는 치아 스케일링을 한다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커피머신은 부품도 분해 닦고 외관은 보드라운 행주로 조심히 닦아 준다. 청소하는데 약간의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제빙기는 조력자 홍님 손에 맡겨 해결하고 있다. 이 모든 걸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가장 이행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지금은 신선한 원두를 항상 구비하고, 배운 대로 커피 추출시간이 목표시간에 도달할 때까지 원두 분쇄도를 조정한다. 너무 연하거나 진하지 않게 물량을 맞춰 에스프레소를 담으면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다. 


자신의 취향이 담긴 근사한 카페 혹은 책방을 운영해 보는  것, 손님들에게 향기로운 커피 한잔을 내려 건네는 것은 종종 듣게 되는 누군가의 로망이다. 하지만 백조가 연못 위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듯 보여도 알고 보면 수면아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처럼 카페와 책방을 운영하는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수고를 감내한다. 바리스타 대부분이 무게가 제법 나가는 커피머신 포터필터를 수없이 끼웠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기에 손목과 팔꿈치가 성치 않은 경우도 많다. 빵, 디저트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인다.


좋아하는 일 안에 적어도 3할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싫어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일 반복해서 싫어하는 허들을 넘어야 한다는 말이다. 손님 앞에 커피를 내려놓을 때, 책을 팔 때 당당한 마음이 드는 것, 내가 늘 바라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4년 너의 작업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