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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Jul 04. 2021

너의 작업실 건물주님 이야기

21. 07.03

오늘은 비몽사몽 우리 건물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때는 바야흐로 1년 전 무더운 여름날, 샤샤미우 작가님, 비바 실장님과 함께 현재 작업실에서 건물주와의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연로하신 어르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건물주 여태명 할아버지는 백발에 몸이 앙상한, 생각보다 더더 연로하신 할아버지였어요. 반면 할아버지의 반려인은 아주 귀엽고  총명한 할머니였습니다. 부동산 직원의 설명에 계약서를 조목조목 확인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전달해 주셨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니 시골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의 외모가 어머니와 무척 닮으셨었거든요. 책방을 할 예정이라고 하니 두 분은 무척 반겨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예전에 책과 관련된 사업을 하셨었다며, 우리가 보통 인연은 아닌가 보다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날 심심해서 책방을 나와.


이사를 마치고 책방을 열던 첫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개업을 했으니 개시를 해 주셔야 한다고 일부러 오신 겁니다. 저희처럼 1층에 세를 들어 계시는 옆집 할머니까지 불러 어르신 세분이 책방 자리에 앉으셨어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가 됩니다. 할아버지는 너의 작업실에서 첫 번째로 펴낸 에세이 집 <목요일 저녁 일곱 시 반>을 사겠다며 꺼내오신 뒤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셨어요. 소개해 드리지도 않았고, 할아버지는 눈도 좋지 않으신데 그 책을 골라오시다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책방 문을 열고 앉아 있노라면 할머니가 뒤뚱뒤뚱 장바구니를 들고나가십니다. 뒤이어 할아버지도 따라가시고요. 두 분 사이에는 늘 다정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또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면 오늘 건물 주님들의 밥상 위에는 뭐가 올라갈까, 3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가끔 궁금하기도 했더랬습니다.


귀엽고 총명했던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지난겨울 지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습니다. 할머니가 그리우셨는지 4개월 만에 할아버지도 따라가셨고요.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쌓지 못해 속상했습니다. 집주인 할머니와 깊은 우정을 나누시던 옆집 할머니는 며칠을 우셨어요. 3층에 올라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뒹굴곤 했는데 이제는 못하게 되었다면서요.  영정사진을 마주했을 땐 저도 덩달아 눈물이 났습니다.

두분이 없었더라면 이 근사한 장면을 담을 수 있는 책방도 없었겠지요.

새로운 건물주가 등장합니다. 2층에 가족과 함께 살고 계시뎌 여태명 할아버지의 아드님이세요. 책방 문을  때부터 아드님이 책과 그림에 관심이 많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저는 여름  작가님이라고 불러요. 그림책을 내는 것이 꿈이시거든요. 가끔 더미북을 가져오셔서 구경도 시켜주신답니다.


엊그제 책방 왼편 감나무에 송충이가 출몰했습니다. 저는 뱀도, 바퀴벌레도 안 무서운데 다리가 없이 기어 다니거나, 다리가 너무 많아 기어 다니는 두 부류의 벌레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해요. 보는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몸이 근질근질 거리거든요. 긴급 SOS를 보냅니다.

"작가님! 감나무에 송충이가 득실득실해요. 조치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안 그래도 오늘 인터넷에 살충제 주문을 넣었습니다. 필요하신 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얼마 전엔 고양시공동체지원센터의 지원금을 받는데 문제가 생겼는데 적극 나서서 해결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남들은 갑질 하는 건물주 때문에  썩는 일이 많다는데, 저는 오래오래 책방 운영해달라고,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 주시는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오랜 기간 우리는 여름비 작가님의 보호 아래 책방을 운영해 나가게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록 짧은시간이였지만 여태명 할아버지, 총명 할머니와의 인연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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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 15만 원 (만원 단위 미만 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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