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님 Jul 31. 2021

어머님이 누구니

책방 일기 2021.07.31

주말이 되면 책방이 비좁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서울에서 잘 나간다는 코워킹 스페이스 '집무실'이 일산에도 생겼는데, 얼마나 넓고 쾌적한 공간일지 가보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진다. 책방에 오는, 무언가에 항상 열심히인 우리 손님들을 데리고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상상을 한다. 창밖으로 변화하는 4계절이 느껴지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매일 같은 시각이 되면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졸리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면 좋겠고, 전화가 오면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장소도, 손님이 오면 미팅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분리할 수밖에 없다. 5년 후 홍님과 함께 근사하고 안락한 공간을 어느 시골마을에 만들어보자고 계획했기에 일산에서는 지금의 작업실에 만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웃거리기 대마왕,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님이다. 얼마 전 책방 건너편에 30평짜리 상가가 나왔다기에 발 빠르게 부동산과 만날 시간을 잡고 작업실을 구하고 싶어 하는 미녹 작가님을 호출했다. (뭐 다른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보기만 하자는 거였...) 오후 3시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자마자 한걸음에 상가 앞으로 달려갔다. 마침 도착한 부동산 실장님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상가 보러 오셨지요?"

"네네.."

(미녹 작가님과 나를 번갈아 보며 실장님의 시선은 내게 머문다.) "어머니이신 가봐요."

 순간 미녹 작가님과 나 사이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나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미녹 작가님이 한마디 했다.

"아.... 아니 친구예요."


참고로 미녹 작가님은 서른한 살이다. 나는 서른아홉이고.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가슴에 펑크가 난 것을 애써 모른 척하며 상가를 둘러보았다. 넓고 쾌적한 공간. 그러나 해가 잘 들어올지 의문이 들었고, 신발을 벗고 들어와야 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짐을 둘 자투리 공간이 많았고, 만약 이곳에서 작업실을 운영한다면 프라이빗하게 운영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지금 작업실처럼 누구나 문턱 없이 드나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이건 뭐 그렇다 치고.)


너의 작업실을 1년 6개월간 운영하며 작가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한 번은 우키다 작가님이랑 같이 있다가 또 한 번은 채재원 작가님이랑 같이 있다가 어머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한 귀로 흘려듣는다면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잊어버리고 싶지만 자꾸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호칭 자체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푸념을 전해 들은 홍님은 찬스라도 잡은 듯 콜라겐과 석류를 먹어라, 옷차림이 문제다, 헤어스타일이 문제다. 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나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그의 입술에 본드를 발라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평소 밖으로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와 마음만큼은 연예인이자 어느 나라 왕자이자 그루밍족인 홍님과 이 문제로 자주 의견 대립을 하기도 한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아니 내가 작가님들과 그렇게 친숙한 사이처럼 보였다니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기로 한다. 일산에서 책방을 하며 앞으로 누군가의 "어머니신가 봐요?"라는 말을 몇 번 더 듣게 될까? 외모를 꾸미는 일에는 관심 없다면서도 내 손가락은 자꾸 의류 쇼핑몰 어딘가를 해매인다.


덧) 매일 글쓰기 방에 이 이야기를 올렸더니 아름다운 손님들은 공간에 대한 의견을 이렇게 보탠다.

"탱님, 어릴 적 여럿이 이불을 덮고 자던 때가 좋았어요."

얼마 전 제주로 여행을 다녀온 **님은 좋아하던 서점이 새로운 공간으로 옮겼다기에 가보았다가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더 넓어지고 현대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예전의 아늑한 분위기와 소박함이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고.

이토록 우리 손님들은 멋지고 아름다워서 어느  나가는 서점도 부럽지않다.


매출은 몰라요 인스타그램 팔로워 늘리기도 노잼.

이상 열일을 제치고 아무 일 하지 않고 놀고 있는

탱님 씀.



매거진의 이전글 꿈의 서점, 꿈지기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