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면서 아이, 엄마이자 동시에 자녀인 피조물의 탄생,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끔찍하고 기괴한 시나리오다.
'창조주 흉내내기'를 하려다 실패한 인간 이야기의 전형인 [프랑켄슈타인]과 비교된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더 플라이]가 떠올랐다. 생체 분자 구조를 분석해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전송기에 직접 들어간 과학자가 때마침 함께 침입한 파리 한 마리와 뒤섞여 괴물로 재탄생하는 끔찍하지만 기발한 스토리.
[더 랍스터]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영리했다. 두 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실감 나지 않을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다. 흑백에서 고풍스러운 칼라로의 전환, 부러 표시 나게 만든 것 같은 몽환적 CG영상들, 어안렌즈와 감각적인 그래픽 등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더구나 '아름답다'는 뜻인 벨라(Bella) 역의 엠마 스톤은 '예쁘다'는 수식어가 한 참 부족할 정도다.
어른의 몸에 장착된 아기의 신경망은 여러모로 미숙할 수밖에. 이런 벨라의 목소리, 표정, 걸음걸이를 보여주려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에 스토리의 상당 분량이 벨라의 성적 삽화들로 채워져 있다. 엠마 스톤은 몸을 던진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푸 거머쥐었다.
'너의 견해는 온전히 현재의 너를 반영하지 않아. 기억 이전의 경험들이 녹아있는 무의식의 산물이야.'라는 프로이트의 인간이해에 그의 후계자 라깡은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라는 말로 "타자의 욕망"을 주역으로 전격 소환한다.
기성 인간은 프로이트와 라깡의 견해를 거부할 수 없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 하지만, 벨라(Bella)는 이런 류의인간이해에 완전히 예외적인 창조물이다.
자위에서 동성애까지 초스피드로 이어지는 벨라의 성적 체험은 '즐거운 놀이(a fun game)'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벨라와의 동일시가 일어났나? 수위 높은 장면들이 난무함에도 영화는 전혀 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리 좋은 것을 왜 온종일 하지 않나요?"
"(매춘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돈도 벌고 즐겁기도 한 일석이조네요"
벨라의 말말들 앞에서 상류층의 고상한 사랑, 남녀 간의 역할규정... 같은 고정관념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남편과의 재회로 다시 위기에 빠진 벨라, 하지만 시종일관 벨라의 곁에 머물던 맥스의 기지 덕분에 영화는 유쾌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벨라 역의 엠마 스톤은 영화의 80% 이상으로 느껴질 만큼 압도적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믿고 보는 윌렘 데포를 포함한 5명의 남자는 무게감이 크지 않다. 그녀의 창조주인 괴짜 의사 갓윈, 플라토닉 러브로 무장한 약혼자 맥스, 성적 여정의 개인 과외 선생 덩컨, 세상의 이면을 알려준 냉소주의자 해리, 폭력과 무례함의 화신인 전 남편 알프레드 등 5명의 남성을 통해 벨라는 당당하고 주도적인 신인류로 재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성장영화로 볼 수 도 있겠다.
(PS.)
- 태중의 아기 성별이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에선 딸이었다고 한다. 만일 아들이었다면 XX인 몸에 XY인 뇌가 장착된 셈인데... 어땠을까?
- 원작 소설에는 벨라가 각종 음식을 탐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단다. 알렉산드리아 편에서 기아로 죽은 아이들을 보고 오열하는 벨라의 모습이 매끄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세태에 오염되지 않은 아기의 뇌를 가진 벨라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먹고eat 사랑하고sex 돌보는care' 일 이있군... 하고 요약하니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 느낌! 이렇게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벨라에게 관습에 찌들어 사는 주변인들은 모두 poor things였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