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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Nov 01. 2023

12. 내게 보내는 열렬한 응원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

어느 겨울, 주말로 넘어가는 초겨울의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깼다. 불면증 탓도 아니었는데 잠에 취해있었지만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낮은 조도의 등을 켜서 거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내가 혼자 사는 집, 정적. 고요함. 그 속에 내가 놓여있었다. 처음 혼삶을 시작했던 때에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당시의 불안함이 악몽으로 이어져 자다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깨곤 했으니 그 시절에 비하면 어느 정도 나의 혼삶에 익숙해진 것이리라. 그때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지만 (아이는 내게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시절) 내가 혼자라는 사실도 어느덧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 삶의 배경 안에 내가 새롭게 놓여있었다.


어느 밤은 심한 몸살감기로 뱃가죽이 당기도록 기침을 하다 잠에서 깼다. 그 사이 코로나도 두 번이나 앓고 지나갔고, 몸살에 감기에 지독하게 아픈 날에도 나는 나를 지켰다. 홀자 앓았다는 표현보다는 스스로를 지켰다는 표현이 낫겠다. 이렇게 혼자 아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살더라도 마음속에 창살을 치고 그 안에 홀로 들어가 앉아 고독사를 할 수도 있고, 혼자 살지만 혼자 사는 것 같이 않게 스스로를 여러 창문으로 연결시키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혼삶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다정히 가족나들이를 하는 단란한 가족들을 볼 때, 나는 왜 저러지 못했을까 아쉽다.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 물론 한다. 그리고 안다. 사랑에 대한 희망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명이 사그라들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러나 이제는 너무도 많이 알아서 탈인 나이. 왕자님이 나타나 내가 원하는 사랑을 듬뿍 쏟아주고 내가 지금 아쉬운 것들을 채워주려니 하는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다. 사랑이 오든 오지 않든 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은 나 스스로에게서 와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 안에는 나 이외에도 남편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자식 같은 존재가 다중이처럼 들어있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나와 나와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엔지이어셨던 아버지의 공구를 가지고 놀아 웬만한 집수리는 혼자 다 한다. 든든하게 전동드릴도 하나 사 두고 툴박스도 들였다. 생각을 해보면 가족과 함께 살 때도 그런 공구들을 먼저 손에 잡는 건 나였다. 그러니 이건 성향의 문제이고 손재주가 있다는 장점에 감사할 일이지 누군가 남자역할, 남편역할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사회생활을 오래 한 여자조차도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남자가 하면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런 일들이 있다. 참으로 놀랍지만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건 사회가 변해가야 할 일이지 그렇다고 내가 남자를 새로 들일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원래 맘에 살아가는 모양이 맘에 다 들 수는 없다.


가끔은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적어내려도 풀리지 않는 나의 궁금증, 고민들. 이랬었다면 어땠을까, 저랬었다면 달라졌을까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미련들을 언젠가는 언젠가는 답이 나오고 미련을 던져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차라리 잠깐 이러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살아가보면 어느 날 알게 될 것도 같다. '이혼'이라는 것은 결국 내 삶에 필요하기 때문에 온 것이라는 것도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결국 나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제 '으른'이 되어 분별력을 가진 업그레이드된 나로. 어쩌면 '이혼'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일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일으키는 것도 결국은 다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붙잡고 내 얘기를, 내 억울함을 들어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멈췄고 (에너지 낭비일 뿐) 조금 더 냉철하고 현명한 내가 나를 응원하는 것으로 내 하루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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