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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Mar 06. 2024

16. 이혼 후 3년

이혼 3년, 혼삶 6년 즈음에

이번 일요일이 3주년 독립기념일 (이혼일)이다. 

서류를 정리한 날로부터  3년, 혼삶을 시작한 지 6년이 되었다.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나도 아이아빠도 각자 조금은 더 잘 지내는 듯하다.

새 학기라 그전에 아이 아빠가 나한테 아이 실내화 좀 사달라고 부탁했고 

어제는 학교 설문조사하는데 이렇게 썼다고 참고하라고 설문지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같이 안 산지 6년이 되어서야 이제야 서로 보조를 맞추는.


그리고 아이아빠를 생각하는 내 시각이 홍익인간'으로 진화한 느낌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아빠가 내 험담을 아이에게 종종 들었다.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는 이러저러 하대"

내용은 여기에 적을 가치조차 없는 '헉'스러운...

당황했지만 아이에게 그게 아니라고 당장 해명하기도 애매하고

아이 아빠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그 여파가 아이에게 돌아올까 봐 참았다.

근데 참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사람이 이제 오십이 다 되어가면서 뭔가 회사에서 밀리나, 부모님 건강이 어디 안 좋으신가, 아니면 만나는 여자랑 잘 안 되나... 싶은 마음?

감정은 상하지만 그렇게 몇 달 더 보내니 무슨 깨달음이 있었지 느닷없이

자기가 못 하는 거 챙겨줘서 고맙다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나니 아이를 서로 안 키우겠다고 싸운 것이 아니라 서로 데려가겠다고 싸운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당장 내게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상에 적어도 나만큼 이상으로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줄 사람은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잘 안다. 나와의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났지만 아이아빠로서의 인연은 삶이 다 하는 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혼자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함께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저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은 거라고 결론지었다.


또 다른 발견은 지금까지 44년 반을 살아오며 봤던 그 어떤 때보다도

당당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다.

늘 나는 누구에 비해 부족하다고만 느꼈는데

지금은 거울을 봐도 적당히 주름진 얼굴이지만

나는 나름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자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디 가서 든 당당히 걷고 환히 웃고 이게 나다 싶어서

내가 나를 퍽이나 좋아하는 진심팬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이혼을 돌아보면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는 것을 배우고 자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교사회가 그러하듯 하나의 권력이나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맞고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 그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별도라는 것을 깨달을 기회가 없던..

하나만 안 맞아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배우고 자란 것 같아서 나의 이혼과정이 그리되었나 싶은 또 다른 시각이.. 같은 결론(이혼)이라는 결론을 냈더라도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줄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싶은 안타까움이...


그리고 가장 뜻깊은 점은...

시간이 이렇게 지나서야 비로소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화해했다. 더 이상 지난날에 대한 자책도 후회나 미련도 없이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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