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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jaewon Feb 18. 2019

우산 없이 만난 비가
반가울 수 있을까요



갈라타 타워를 들렀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난데없이 비가 쏟아졌습니다. 당연히 우산은 없었고 당황한 얼굴이 많이 보이는 것 보니 비가 올 걸 몰랐던 건 우리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날따라 좋아하는 하얀 신발을 신은 저는 이 신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여행 중에 신으려고 아껴둔 신발인데 시작부터 이런 비를 만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소낙비는 금방 그치니까 빨리 그치길 바라며 재빨리 트램 정류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소낙비가 아녔는지 그칠 줄 모르고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예상 밖이었지만 비가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반대편 정류장에 서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나요?




우산 없이 비를 만나도 좋을 수 있나 봐요





바지도 신발도 다 젖었지만 저도 저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5월의 이스탄불은 덥지 않습니다. 비가 공기를 시원하게 해 준 것도, 우리가 비를 반긴 것도 아녔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째법 반갑게 이 비를 맞았습니다. 저 표정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가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잘 알 것 같습니다. 비가 온 날은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밤이었는데요. 이 곳에서는 준비하지 못한 만남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되지 않은 만남들이 이스탄불을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도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빠리에서 이 여행은 시작했습니다. 




혼자 떠날 여행이었습니다. 스페인 여행을 끝내고 빠리로 돌아온 저는 그 날 저녁 친구를 만났고, 친구에게 터키 여행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터키를 다녀온 적이 있는 친구가 이 여행을 함께해주길 바라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한참 제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나도 터키 같이 가도 돼??"하고 물었습니다. 이미 이스탄불행 티켓과 터키 국내선 티켓을 모두 구입한 상황이었고, 여행이 10일도 남지 않은 날이어서 티켓이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갑작스러웠지만 사실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잘될 일이었는지 우리는 함께 이스탄불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이스탄불에서 며칠에 걸쳐 세 번이나 마주친 터키인이 있습니다. "하싼"이라는 선생님인데요. 싸리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스탄불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우리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계속 마주치는 게 그들도 신기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 연락처를 교환했고 계속 연락하며 지내자는 약속 아닌 약속을 했습니다. 여행객끼리 으레 하는 소리니까요. 좀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후 그의 집에 초대받아 전혀 계획에 없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싼과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소개할게요.








여행의 방식에는 옳은 것이 없습니다. 개인이 선호하는 방식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비처럼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묘미는 준비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던 친구처럼, 갑자기 만난 비처럼 그리고 하싼의 뜬금없던 제안까지 모두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을 그렇게 반기지 않으니까요. 일상에서는 저도 그렇습니다. 하던 대로 하는 게 제일 속 편하죠. 아마 퇴근길에 저런 비가 왔으면 정말 짜증이 났을 겁니다.



일상에서 저는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저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에 대한 기대를 한껏 짊어지고 살죠. 회사는 올해 연봉을 더 인상해 줄 거고, 친구들은 저를 많이 생각해줄 거고, 오늘의 지하철은 칼 환승을 나에게 선물해줄 것이라는 등등의 기대들 왕창 머릿속에 넣고 삽니다. 기대하고 준비하고 그것들이 생각과 엇나가면 상스런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우산 없이 비를 만난다는 것은 준비하지 못한 나를 비관하기 딱 좋은 조건이거든요. 이스탄불에 있을 때 즈음의 저는 가벼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가진게 없어서 가벼웠는지는 몰라도 그 덕에 지금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보고 나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가볍게 산다면 이스탄불에서 준비 없이 만난 것들을 웃으며 반겼던 것처럼 나의 오늘도 즐겁지 않을까요? 내일 만날 눈이 질척일지라도 반갑게 맞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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