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능합니다.
저는 서울 출신은 아닌데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 사람이 아닌 것 같지만 또 서울 사람입니다. 20살에 서울에 처음 올라와 여기가 서울이구나 느꼈던 순간은 형형색색의 버스들이 줄지어 도로 한가운데를 지날 때였습니다. 뜨문뜨문 길게는 30분 단위로 버스가 오던 우리 동네와는 달리 한 번에 여러 대의 버스가 한 번에 제 눈앞을 지난다는 사실에 이 곳이 서울임을 실감했습니다. 도시의 크기를 실감하게 했던 건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아니라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출퇴근 길 시간을 잘 못 맞추면 내가 죄라도 지은 마냥 사람들 사이에 끼여 말 그대로 지옥철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곤 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인구밀도가 높고 정신없는 도시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양한 도시들을 다니면서 서울처럼 빠르고 붐비는 도시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서울만큼 사람이 붐비는 도시는 많습니다. 빠리만 해도 수많은 관광객이 있고 루브르나 에펠탑을 가면 강남역만큼 사람이 붐비니까요. 하지만 그곳과 서울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릅니다. 그곳이 일상인 10만과 그곳이 여행인 10만의 얼굴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걸 바라보는 저의 기분도 다르고요.
하지만 이 곳은 빠리와는 또 다릅니다. 이스탄불의 인구는 1500만 명입니다.
어딜 가나 사람에 치여서 좀처럼 여유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출근길 신도림역이 혹시 이럴까요? 평일 오전에 방문한 시장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관광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터키는 유럽에 비하면 훨씬 적은 관광객이 찾는 여행지라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구석구석 걸었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느끼는 방법은 각자마다 다르지만 저는 걸으면서 새로운 도시들과 친해집니다. 걷는 것이 가장 느리게 그 도시에 머무는 방법이고 가장 가까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성가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불편한 접촉을 할 때도 있지만 조금만 마음을 가볍게 먹으면 여행지의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도시와 친해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아무 요구사항 없이 이발사에게 제 머리를 맡기는 겁니다. 어떠한 관광지에서도 관광객에게 물들지 않은 유일한 공간이라는 생각에 1 국가 1 이발은 제가 꼭 실천합니다. 이스탄불에서는 미용실에 들어가 아무 말 없이 눈빛으로 통했습니다. 이발사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이발사도 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말이 안 통할 걸 직감했는지도 모르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기 전까지 걱정이 많았지만 굉장히 만족했습니다. 1500만이나 사는 도시에서 다양한 머리를 다뤄본 이발사라 이 정도는 무리가 아니었는지도 모르죠. 다양한 나라에서 머리를 잘라봤지만 제 머리가 어렵지 않아서 그런지 대체로 만족했었습니다.
제가 만난 이스탄불은 1500만을 품고 있는 이스탄불의 모든 모습은 아닐 겁니다. 관광지 주위에 머물고, 예쁜 곳만 찾아다닌 제가 본 이스탄불은 1500만의 일상과는 괴리가 있을 테니까요. 사람이 많이 산다는 건 때론 귀찮은 일입니다. 여유를 가지기도 힘들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소리도 들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잠시 머무는 여행객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활기차게 도시를 즐길 수 있고,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처음 듣는 소리들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셀카봉으로 전화하는 사람도 볼 수 있고요.
이스탄불의 인구를 찾아보고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사방을 돌아봐도 끊임없는 사람들과 귀를 막아도 들리는 다양한 소리에 이 곳은 서울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 도시에 서울보다 많은 사람이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1500만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중국은 3000만이 사는 도시도 있다던데 아직 제가 안 가봐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1500만을 보았으니 3000만도 겁은 나지만 궁금해지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