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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거나 미치거나 Apr 08. 2021

누구에게나 고양이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 flockine, 출처 Pixabay



크고 깊은 유리잔에 얼음을 가득 쌓아 올리고 맥주를 채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로 반신욕을 하면서 유리잔을 보고 있으니 몽글몽글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에 눈길이 갔다.


아주 자그마한 것들이 조금조금씩 계속 올라오는데 뭐랄까... 그걸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비워지고 개운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렇게 한참 동안 시간을 흘려보냈다.






마치 고양이가 된 것 같은 기분.

고양이들은 몇 시간이고 한 곳을 쳐다보며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딱 손가락 한 개 정도 들어갈 간격만 두고 벽을 마주 보고 한참 앉아있기도 한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도저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요즘의 나는 루틴 관리를 하면서 일상의 많은 것들을 자동화(습관화)시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소위 '멍 때리는' 시간을 체크해서 그 공간을 계획한 일로 채우는 일을 반복하고 늘려왔다.  그러다 보니 최근 얼마 간은 정말 여유로울 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자주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한 음식을 먹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원래 먹던 음식보다 간이 세기 때문에 한 입 두 입만 먹어도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지 않을 때, 적당히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고양이가 되는 시간'도 그렇다. 시간이 멈춘 듯, 느긋하게 집중하는 시간. 너무 자주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더 반갑다. 일상 속에서 조금씩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더 소중하다. 누구에게나 고양이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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