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bottle in Kyoto
미리 일러두지만 이것은 지난봄의 이야기다.
'인싸'라면 블루보틀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또는 매장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 한 장 정도는 박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내 주변에도 인스타그램 쫌 한다는 사람들은 다들 블루보틀의 파란 병 로고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커피맛? 세련된 인테리어? 사람을 끌어 모으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궁금했다.
일본 교토 청수사(기요미즈데라)를 구경하다가 많이 걸은 탓인지 다리가 저려왔다. 카페에서 다음 목적지도 정할 겸 쉬어 가자 싶어 인터넷 검색 중 멀지 않은 곳에 블루보틀 매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한국에는 매장도 없는 상황이니 물이 들어올 때 나는 노를 저어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라도 꼭 알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핫한 것을 경험하려면 품과 시간이 많이 든다. 혹시나 하고 찾아간 집은 역시나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맛보겠어'하고 한숨을 내뱉는 속마음을 달래 본다. 건물은 옛날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오래된 2층 나무집을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예스러움은 그대로 살려두고 나머지 부분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고즈넉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혼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세련되어 보이긴 했다.
해외여행 중 같은 동양사람들끼리는 입고 있는 옷 스타일이나 얼굴 정도를 보면 대충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걷다가 동양사람을 볼 때마다 '한국 사람이군, 넌 일본 그리고 너는 중국' 속으로 혼자 국적 맞추기를 하는데 교토 블루보틀 매장에는 8할은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 해외에 나와서 까지 한국 사람들 무리에 끼어 있고 싶지는 않은데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는 더더욱.
우리는 사람들이 인생라떼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Latte(single origin) 한 잔과 Americano Drip coffee(Blend)를 시켰다. (블렌드보다 싱글이 100엔 비싸다.) 싱글과 블렌드의 차이는 하나의 원두를 가지고만 커피를 내리느냐 여러 가지 원두를 섞어 사용하느냐의 차이로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 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로스팅된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나온 가루를 포타 필터에 꼭꼭 눌러 담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추출 하지만 드립 커피는 분쇄된 커피가루를 거름종이에 넣고 그 위에 천천히 원을 그리며 물을 부어 아래에 모인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바에서 직원이 드립 커피를 만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스타벅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직접 감상해보시라. 손님이 마실 커피에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블루보틀의 창업자 프리먼은 오래전 일본에 방문했을 당시 찻집에서 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온전히 10여 분은 쏟는 정성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점을 현 블루보틀에 그대로 적용하여 손님들에게 서비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매장 내부에 흔한 와이파이와 콘센트 설비 또한 없단다. 이 점도 스타벅스와 차별화가 되는 데, 한국 사람이라면 피가 마를 정도로 불안에 떨 수 있는 일이다. 라면을 주고 김치를 주지 않는 것이며 삼겹살을 팔면서도 소주는 팔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정성 들여 내놓은 커피와 함께 온 사람에 집중해서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라는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블루보틀의 정체성이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슬로우 라이프 체험과 좋은 재료를 이용하여 정성이 담긴 커피를 제공함에 있다고 하지만 하루 종일 녹색창 실시간 검색어에 1등을 할 정도로 빅히트 인지라 (5월 3일 성수동에 블루보틀 1호점이 생겼다) 매장 밖까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매장 내부 또한 전쟁터와 다름없으니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기 어렵다는 아이러니가 발목을 잡는다. 전 세계에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5/3일부로) 에만 매장이 있고 블루보틀 공식 인스타 계정 팔로워 수 3분의 1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논외로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막강한 화력(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성지 순례하듯 너도나도 블루보틀을 방문하고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그 사진은 또 다른 수없이 많은 사진을 재촉한다. 자주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커피콩과 머그컵, 각종 굿즈를 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크한 듯 혼자 서있는 새파란 로고가 있어 보여서 일까 커피계의 애플, 샤넬이라는 수식어까지 보인다.
드립 커피는 아주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할 때 마시면 좋을 정도로 집 나간 정신을 불러오는 진한 맛이었다. 참고로 나는 진한 것을 좋아한다. 라떼는 인생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일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소하다', '꼬시다'는 형용사는 붙일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입맛이다 임마!"
벚꽃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래, 커피는 분위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