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특별한 목적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누군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또 뻘쭘하고 해서 또 화면을 바라본다. 운전 중 신호에 걸리면 또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 밥을 먹다가도 옆에 누가 있더라도 폰은 늘 나와 함께 한다. 잠까지 같이 자려고 침대에도 같이 들어가니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쇼핑을 하고 뉴스나 드라마를 본다. 주식도 하고, 책도 읽는다.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린다. 메일도 보내고 업무도 할 수 있다. 직접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물건을 살 수 있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mp3가 없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지갑이 없어도 결제가 가능하다. 너무나 편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적지 않다. 뉴스 기사를 읽기 위해 들어간 사이트에는 클릭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광고와 선정적인 사진, 문구가 우리를 유혹해댄다.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가격을 비교하는 것도 우리의 시간을 앗아간다. 이것 또한 비용이다. 15,000 원하는 티셔츠를 인터넷에서 8,000원을 주고 샀지만 최저가 티셔츠를 찾기 위해 폰을 붙들고 2시간 동안 서칭을 했다면 과연 싸게 샀다고 할 수 있을까? 두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습관적으로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사람은 양질의 수면을 빼앗기고 다음 날 아침 피곤해하면서 기상한다. 이 경우 학생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직장인은 업무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잠을 줄여가면서 본 보람이 있군'하고 생각이 드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양질의 콘텐츠도 있지만 구독자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도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스마트해지기 위해서는 다시 불편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그렇다고 원칙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동물이라 필요한 만큼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그 외 시간은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지켜지기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아마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스마트폰을 터치했을 때 아주 짜릿한 전기, 단 한 번의 터치로 숨통을 끊어버릴 만큼의 전류가 통하지 않는 이상 습관적으로 폰을 들여다보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우리는 습관의 동물임을 말해준다. 두 번째는 IT업체들은 의지가 약한 인간을 절대 그대로 두지 않는다. 불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처럼 생각되게 우리를 꼬드기고 어떻게든 주머니를 털어갈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스마트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오히려 불편해져야 한다고. 종이책과 신문이 사라지는 시점이지만 부피와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종이책을 읽고, 스트리밍 시작이 굳건하지만 앨범을 사서 모으고 듣고, 컴퓨터 게임보다는 야외활동을 즐기며, 업무나 공부를 하면서 폰으로 날아드는 메시지와 스팸광고로 집중력을 잃을 바에야 방해금지 모드를 켜거나 전원을 끄겠다고. TV보다는 라디오를, 해외여행을 가서도 구글 지도를 보고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다니다 길을 잃기도 하고 거기서 새로운 추억이 생기길 바라본다. 이런 불편한 행위는 품과 시간이 많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을 붙잡고 죽여버린 시간과 비교해보면 빚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만 보면 스마트폰은 인간을 스마트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스마트하게 인간을 구속하게 된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인간이라는 입력자/조력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일상화되면 인간과 스마트폰이 하나의 기계로 일체화됩니다. 흘러가는 정보의 노드로만, 혹은 그것의 컨트롤 패널로만 기능하는 것이지요. 정보를 확인하고 다른 데로 보낸다, 이건은 봇 bot들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시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만이 돈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시대의 인간 군상>_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