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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Dec 21. 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문학을 읽는 이유

나는 문학을 대할 때마다 그 효용에 대해 따지는 사람이었다. 사실 사회 초년생 때는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다. 스스로 어떤 유형의 사람이었느냐에 따라 읽는 책도 바뀌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오로지 투자 관련서적들만 읽었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벤저민 그레이엄, 그리고 현대판 투자 관련 서적으로 레이달리오의 <원칙>을 성경처럼 정독했다.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충실했던 데다 어쨌든 돈이 주체가 되는 업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더 선호했다. 그것들은 어떻게 돈을 잘 버는지,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분야만 조금 다를 뿐이지 자기 계발서와 궤를 같이했다. 그 책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깊은 사유나  큰 고민 없이도 받아들일 수 있다.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한편 소설과 시들을 읽고 나면 정답을 알 수 없는 애매함이 있었다. 책을 덮은 뒤의 아리송한 무엇들이 뜬구름처럼 떠다녔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아닌 고불고불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인물이 그래서 옳다는 건가 그르다는 건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뭘까. 그래서 인생에 정답은 뭐라고 얘기하는 걸까. 그 애매모호한 상태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병을 치유하는 것처럼 문학은 느리게 와닿았다. 그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발을 담갔다가도 이내 떼어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 무용지물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의구심을 안은 채 책을 펼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그러다 만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이 책은, 그런 내게, 문학은 영원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다는 인상을 깊이 심어준다. 소설 속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면 더 이상 과거로 돌이킬 수 없듯, 독자들은 소설을 읽고 조금은 미세한 '단절선'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독자는 다른 사람일 거라고. 운이 좋다면 그 단절선이 그어질 거라고 말한다.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단절선을 긋는다. 그 선은 의식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간의 내 편견이었는데, 아닌 것 같다.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가일수록 엉뚱하고 무심하게 그 선을 그려 보여주는 듯도 하다. 소설을 읽으며 그 선들을 따라가다가, 운이 좋다면, 내 삶에도 단절선이 그어질 것이다. 121p


 사람들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나와 '다른'사람을 대부분 '틀리다'라고 말한다. 대개가 그렇다. 나 역시도 늘 누군가를 욕한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은 나랑 '다른' 사람일 뿐인데. 이런 좁은 마음들은 결국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이 작은 데서 비롯된다. 중년의 나이를 넘고서도 그런 간장종지만큼의 사람을 볼 때 참 씁쓸하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성숙한 어른,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세상에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다. 여행이 될 수도 있고, 폭넓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뼈아픈 고통과 시련의 극복이 인간을 성숙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문학도. 우리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문학을 읽을 때 우리는 더욱 뾰족한 감수성을 기른다.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왜 굳이 농업을 포기하고 고뇌 끝에 영문학의 길을 택했는지, 왜 가정을 뒤로하고 제자와 만남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인물을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살피게 된다. 세상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리고 함부로 욕하지 않게 된다.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세상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문학을 통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느리고 흐릿하지만 그 세계로 들어간다. 내 안에 균열이 생길 때까지. 그 전의 나와 후의 내가 조금씩 바뀔 때까지. 문학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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