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탁월한 설교자
최근 인간 역사에서는 질병(특히 정신적 질병), 가뭄, 홍수, 지진, 날씨, 태양계 구조, 식물상과 동물상 등의 현상을 마법이나 종교의 영역에서 떼어내 과학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경외감을 잃었다. 나는 그렇게 된 것이 어느 정도는 전달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과학을(혹은 수학을) 가르칠 때도 탁월한 설교자에 못지않게 열렬한 열정으로 가르쳐야 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살면서 우리가 물리적으로 사고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어떤 물체를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와 전자를 떠올린다거나, 생명활동을 헤모글로빈의 산소운반과 연관 짓거나 그러지를 못한다. 북한이 어마무시한 위력을 가진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에도, 그 핵무기는 '국가 안보의 위협'이라는 정치적 개념으로 다가올 뿐이다. 과학은 그저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이해하기 어렵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학문이다.
이과 출신임에 불구하고 과학은 여전히 친숙하지 않다. 사샤 세이건의 책에서 사람들이 자연의 법칙에 대하여 경외감을 잃게 된 것이 어느 정도는 전달방식의 문제라는 문장에 구구절절 공감했다. 사실 과학은 우리 존재의 근원을 설명해주는 가장 반박할 수 없는 학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게 맞다. 그 경이로운 학문을 우리는 학창 시절 입시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주입받았나.
어떤 방식으로 교육받느냐는 그 학문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학창 시절 좋아하던 선생님의 과목을 전공으로 택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선생님은 탁월한 설교자 못지않은 열렬한 열정으로 학문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준 은인이다.
이 책은 과학과 담쌓은 우리에게 그런 선생님이 되려는 시도를 한다. 과학적 사실을 그 이론 자체로 동떨어진 게 아니라 세상과 최대한 밀접하게 연관 지어 설명해주려고 한다. 우주와 빛의 근원, 양자역학과 중력의 법칙에 인문학적 필터를 씌워준다. 누군가에게는 과학동아보다 더 얕은 지식의 단편집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쓱 한번 읽고 나면 대략 얼개가 잡히는 느낌이랄까. 어렵지 않아서 좋다. 학창 시절 배웠던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기도 했다.
이런 책이나 지식전달자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꼭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만 물리법칙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려고 무언가를 배우듯. 과학도 그 진입장벽을 넘는다면 살아가는 또 다른 재미를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