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태선 Nov 15. 2020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상 2편

밥과 집을 주자!


 혹시 미운 네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밥을 안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놀고 심한 경우 놀이터에 밥을 들고 나가는 경우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현직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첫만남은 정말 우연히, 아주 우연히 운이 좋게 만난 경우고 대부분의 경우 서식지-활동 반경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를 전부 돌아봐야 만날까 말까 였다. 정말 운이 없으면 두세시간을 돌아다녀도 못 만나는 날도 있었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밥은 잘 먹는지, 다른 고양이한테 맞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계속 찾아다니는 수밖에.

 위에 예시를 든 미운 네살처럼, 고양이도 돌아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밥을 안 먹는 것 두 가지가 합쳐져 아주 골치가 아팠다. 이녀석 생선이 들어가면 얼마 안 먹고, 알갱이가 작아도 안 먹고, 같은 사료를 연속으로 주면 안 먹는 등 입도 짧고 입맛이 엄청 까다로웠다. 아직 어리고 밥도 잘 못 먹는 길고양이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건, 통장 잔고가 백만원 단위로 깨지고, 집에 끝까지 안 먹고 남은 사료 수개를 중고로 아주 싸게 팔거나 무료로 나눔을 하면서이다. 또한 사료의 그람당 가격이 싸다고 무식하게 10kg짜리를 사지 않게 되었으며, 사놓은 사료는 공기와 닿는 걸 최소화 하기 위해 작은 은박 봉투에 소분을 먼저 하였고, 사료든 간식이든 꼭 샘플을 먼저 사서 먹여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아이고 내 돈, 아이고 힘들게 벌어 장렬하게 산화한 내 돈아... 

 신기한 건 이렇게 귀찮고 싫은 것처럼 써놓았지만 막상 밥을 잘 먹는 걸 보게 되면 그게 또 아주 흐뭇하다. 손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생명체가 자기 코의 절반만한 사료를 어떻게 먹을지 혀로 이리저리 굴리다가 하나를 입에 넣고 와그작 씹으면 맛이 있는지 동공이 커지는데 그게 참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하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는 맛있는 사료와 간식에만 해당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아직 아이를 키워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아이가 있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맛있는 사료나 간식을 다 먹으면 나와 눈을 맞춘채로 걸어와 다리에 몸을 비비고 손을 내밀면 손에도 비비는데 보들보들한 털이 주는 감촉은 정말 야생에서 살고 있는 동물의 그것이라고는 생각이 안 될 정도로 퍽 보드라웠다.

 손으로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을 느끼며 머리나 몸통을 쓰다듬으면 그릉그릉 소리를 내는데 처음에는 아픈 곳을 만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소리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말하는 ‘골골송’이었고 기분이 좋을 때 낸다는 걸 알았을 때는 살짝 감동 했었다. 골골송을 내다가 더 기분이 좋아지면 갑자기 발라당 배를 드러내며 몸을 뒤집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인간미라고는 느낄 수 없는 시멘트 바닥에 등을 대고 몸을 이리꼬고 저리꼬고 뒹굴뒹굴하는 생기 넘치는 모습은 참 귀여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작은 몸뚱아리를 가지고 갑작스레 거대한 야생에 던져져 세상의 악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 안타깝고 슬펐다. 그래서 더 자주 가게 되고,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고양이의 사료는 당일 시키면 다음날 택배로 받을 수 있었지만, 겨울집은 그렇지 않아 겨울집을 지어준 것은 생각보다 오랜 후의 일이었다. 먼저, 겨울집을 만드는 길고양이 단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2주나 늦게 배송을 시작했고 택배 회사에서는 이것을 전국일주를 보냈는지 이 또한 2주나 걸려 도착하게 되었다. 결국 9월 말에 신청한 길고양이 겨울집은 날씨가 꽤 추워진 10월 말이 되어서나 도착하게 되었다. 추운 날씨에 집도 없이 여기저기 낑겨 살았을 고양이를 생각하자면 그래도 더 늦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겨울집을 받은 날, 뚝딱뚝딱 바로 만들어서 가지고 나가니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너무나 쉽게, 당연하다는듯이 그곳을 집으로 삼았다. 참 다행이었다.

 집이 생긴 고양이는 아주 멀리 나가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밥을 주는 것이 수월해져서 더 자주 가게 되었다. 자주 가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계속 뭔가 이것저것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고양이 집에 담요도 넣어주고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캣닢을 뿌린 인형도 넣어주고 추워지면 핫팩도 넣어주기 위해 핫팩용 주머니도 넣어주었다. 그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도 내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근처에 가면 야옹야옹 울고 몸을 다리에 부비며 친한척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정도 붙었겠다 이름을 붙여줘야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어느날, 밥을 주러 갔는데 새로운 고양이가 있었다. 

 새로운 고양이가 내가 만들어준 턱시도의 집에서 나오니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다. 고양이는 배는 하얗고 등에는 갈색 줄무늬가 있는 흔한 고등어 태비였다. 자세히 보니 턱시도 밥을 주면서 옆에서 몇 번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 고양이라는 걸 깨달은 건 느지막이 집에서 나온 턱시도가 기지개를 펼 때 였다. 밥 주던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동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옆에 한 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말을 걸어주셨다.

 “어머, 안녕하세요. 시루랑 마루를 돌봐주시는 분이군요. 가끔 애들 밥 주시는걸 봤었어요.”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상 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