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생의 비밀
말을 걸어주신 분은 차분하고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였다. 난 낯을 많이 가려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낯을 가리는 것보다 내가 챙겨주는 고양이의 일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밥을 주게 되었네요. 그런데 얘네 이름이 시루랑 마루인가요?”
“네. 그러고 보니 애들 이름을 모르시겠구나. 고등어가 시루고 까만 애가 마루예요.”
예전에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 보면 줄무늬가 있거나 노랑, 깜장 색이 섞인 고양이에게 시루떡 같다고 말하던데 도대체 무엇이 시루떡인지 잘 몰랐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시루라는 고양이는 등판부터 배로 이어지는 털의 색깔과 모양이 정말 시루떡같이 생겼다. 턱시도도 그렇고 시루떡도 그렇고 정말 사람들이 이름을 잘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턱시도의 이름은 턱시도가 아니라 마루인 걸까. 마루 이름에 대한 궁금증은 뒤로한 채로 궁금했던 사항들에 대해 대화를 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태어난 건 올해 3월 초로, 아주머니께서 밥을 주시던 고양이가 낳은 5남매 중 유난히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집을 놔준 자리가 아주머니께서 원래 밥을 주던 자리였고, 엄마 고양이는 작은 아이들에게 밥이 잘 나오는 좋은 자리를 물려주고 다른 곳에 새 터전을 잡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시루와 마루는 아주머니의 보살핌으로 예방접종도 다 맞았고 중성화도 끝났다고 했다. 중성화를 했지만 귀를 자르지 않은 이유는 지역 TNR 사업으로 하신 게 아니라 직접 사비로 하셔서 동물병원에서 따로 자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턱시도가 마루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냥 시루떡 같이 생긴 아이 이름을 시루로 정하니, 남은 아이에게 ‘시’로 시작하는 이름이나 ‘루’로 끝나는 이름을 붙이고 싶으셨는데 ‘루’로 끝나는 단어 중에 마루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마루로 정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길고양이에게 신경을 써주는 동지를 찾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공동육아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랫동안 말하는 게 신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단연 오랫동안 이야기한 건 고양이 식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마루의 식성은 정말 까다롭다. 생선이 들어간 사료, 알갱이가 작은 사료는 안 먹고 같은 사료를 계속 주면 안 먹는 등의 사실만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식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떤 브랜드의 사료는 생선이 들어가거나 알갱이가 작아도 먹고 어떤 간식을 쓰면 먹이기 어려운 가루약이나 알약도 먹일 수 있다는 등의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시루의 식성은 마루와 정반대라고 말씀하시면서 애들 밥 주신다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두 가지 사료를 꺼내는 걸 보면서 앞으로의 고된 날들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사료를 주고 약속이 있다며 가시는 아주머니의 배웅하고 고양이를 봤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엄마랑 떨어지고 형제 둘이서 살아가는 모습이 인간으로 치면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와 같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욱 측은하게 보였다. 내가 이 아이들의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냥놀이를 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보니 웃음이 지어졌다. 오른쪽으로 뛰고 왼쪽으로 뛰고, 서로 엉켜서 흙바닥을 뒹굴다가 나무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니 내 걱정이 쓸모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일처럼 돌봐주는 아주머니도 있고, 밥 굶을 걱정 없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신기한 일이 생겼다.
둘 다 사냥놀이를 하다 말고 귀를 쫑긋 세우고 동공이 커지더니 아파트 풀숲 먼 곳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벌레 같은 게 있는가 하고 보고 있으니 몸집이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배는 하얗고 머리와 등은 카오스인 것이 기묘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찰나, 시루와 마루가 야옹야옹거리면서 그 고양이에게 뛰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봐 헐레벌떡 뛰어가니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시루와 마루 둘 다 그 고양이에게 몸을 비비면서 꼬리를 세우고 야옹야옹 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고양이는 시루와 마루를 열심히 핥아 주는 광경이 퍽 다정해 보였다. 나중에 아주머니께 들은 이야기지만, 시루와 마루의 엄마가 가끔씩 돌아와서 잘 지내는지 확인한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 장면을 본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 어머니가 가끔 아이들이 그리워 다시 돌아온다니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