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상 4편
길고양이의 겨울나기
겨울은 길고양이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평소에 자던 곳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기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장소는 많은 고양이가 몰리게 되어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힘이 약한 고양이는 간신히 바람만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오들오들 떨게 된다. 어찌어찌 잠을 잤다고 해도 이제는 먹을 것이 문제가 된다. 날씨가 쌀쌀할 때까지는 길고양이 밥 주는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잘 나오고 혹여 밥 주는 사람이 나오지 않더라도 새나 곤충을 사냥해서 먹는다. 만약 이마저도 안 되면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어찌어찌 상하지 않은 음식을 찾아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밥 주는 사람도 인간인지라 추워서 잘 안 나오게 되고, 사냥감은 씨가 마른다. 결국 음식물쓰레기 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너무 추워지면 그마저도 얼어붙어 고양이가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최종적으로 수면부족과 허기짐으로 인해 몸의 컨디션이 나빠지면 구내염이나 피부병 등 지병이 도지게 되고 이는 죽음으로 연결되게 된다.
여기 태어난 지 9개월 된, 인간 나이로 치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다 큰 고양이보다 몸집이 작아 싸움도 못하고 사냥 경험도 적으며 심지어 구내염까지 앓고 있는 고양이이다. 아이고 맙소사, 가만두면 그냥 죽을 운명의 고양이인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밥 주는 사람도 여럿 있고, 따뜻한 집도 얻었으니 만만세인 상황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끔씩 시루와 마루의 보금자리에 놀러 온 고양이에게 밥과 간식을 주어서일까, 아니면 급식소처럼 사료와 물을 항시 놔뒀기 때문일까. 덩치가 큰 어른 고양이들이 하나 둘 보금자리를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시루와 마루가 스트레스를 받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자서 애들을 찾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원래 길고양이의 습성이 넓은 구역을 돌아다니는 방랑벽이 있다지만, 챙겨주는 입장에서는 내가 만들어준 편한 장소를 거점으로 잡아 살아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내가 만들어준 보금자리에서 계속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 다른 고양이의 침범으로 갑자기 거점을 옮기게 되면 엄청 걱정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루나 마루가 없는 날에는 아침/밤 할 것 없이 찾으러 다니게 되었고, 보금자리에 없는 요일이 있는 요일보다 많아지게 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아주머니와 상의를 한 끝에 일단 사료그릇과 물그릇을 시루와 마루의 식사 시간에만 놓고 나머지 시간에는 치우고, 다른 고양이가 보금자리 근처에 영역 표시한 부분을 찾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 시루와 마루가 있기 편하게 만들어주고, 아침/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을 위협해서 쫓기로 하였다. 이중 앞의 두 개는 아주머니께서 담당하기로 하였고 나는 위협해서 쫓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아무래도 전업주부이신 아주머니께서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했고, 남자인 내가 다른 고양이를 쫓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혹시 막대기를 들고 고양이와 노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인터넷에 ‘고양이 장난감’만 검색해봐도 많은 자료가 나온다. 기다란 막대 장난감을 사람이 이리저리 휘두르면, 고양이가 그것을 잡기 위해 폴짝폴짝 뛰는 장면이 나올 것이다. 만약 고양이를 막대기로 쫓는 장면이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인간 vs. 야생’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야행성이라 대부분 밤에 찾아오는 불청객에게 긴 막대를 다치지 않도록 휘두르면 당연히 자신이 공격받았다 생각하여 경계하고 위협을 하게 되는데, 이 대치상황이 길어지면 고양이가 사람을 할퀴거나 물게 된다. 물론 최대한 다치지 않게 조심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횟수가 많아지면 위협의 대가가 쌓이기 마련이다. 밤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처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여 결국 2주쯤 경과하게 되었을 때는 파상풍 주사를 맞았지만 파상풍이 걱정될 만큼 많은 상처를 양팔에 얻게 되었다.
똑같은 길고양이인데 누구는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보호받고, 나이 먹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쫓기는 이런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 돌봐준 고양이에게 정을 줬고 그게 내 새끼라는 느낌이 들면 다른 새끼가 내 새끼를 괴롭히는 걸 두고 보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게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정의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내 팔에는 다른 생명을 핍박하고 위협한 결과물이 잔뜩 남게 되었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3주 차에 들어서게 되자 다른 고양이들이 시루와 마루의 보금자리에 오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을 보금자리에서 보는 날이 많아지게 되었다.
어렵사리 되찾은 보금자리는 이제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사료그릇과 물그릇을 우리 아이들만 볼 수 있는 곳에 숨겨놓았고, 아이들이 따뜻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핫팩을 아침, 저녁으로 갈아주었다. 또한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의 보금자리라 알게 되어 내가 없는 날에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일종의 공동육아처럼 아이들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이로 인해 아이들이 오랫동안 보금자리를 비우는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찾아주며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