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ali record
Nov 14. 2023
우리 동네 사랑방 M카페.
사장님은 현실과 타협했다.
동네 아파트 단지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의 간판도 기억나지 않는 가게는 어느샌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다. 카페가 들어서는 듯했다.
걸어서 3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이니 오픈하면 한번 가봐야지 싶었다.
카페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짐 많은 건 딱 질색이라 보조배터리도 들고 다니길 거부하는 나지만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노트북이라도 들고 가서 커피 좀 홀짝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볼 요량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나름 고대하는 마음으로 오며 가며 카페가 새 단장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꽤 즐거웠다.
며칠 뒤 가게 내부에 등받침이 없는 사각 형의 조형물로 보이는 의자와 사각 형의 테이블이 생겼다.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따위 의자 라니.
게다가 테이블은 의자와 같은 높이였다.
저것이 정녕 의자와 테이블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키페가 아니라 전시장을 차리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의자라 불리는 저 딱딱한 것에 앉아서 허리를 굽혀가며 커피를 넘기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엉덩이가 불편해지는 기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로테이션을 생각해서 일부러 불편한 의자를 두는 카페들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이유에서 일까.
아니면 시각적인 요소만을 생각한 건가.
사장님이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 확신했다.
나의 기대감은 실망감을 지나 무관심이 되어버렸다.
햇살의 따스함이 따갑게 다가오던 어느 날.
어느샌가 M카페가 영업 중이었다.
역시나 인테리어가 문제였던 건지 흔히 말하는 ‘오픈 빨’도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호기심에 히스 씨와 함께 방문했다.
다른 의미로 센스가 돋보이는 심플한 인테리어와 세련된 옷차림의 사장님이 묘하게 어울렸다.
카운터에는 직접 로스팅한 듯한 원두 두 가지가 놓여있었고, 메뉴도 많진 않았지만 전문 커피숍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각각 다른 원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주문했다.
와중에 이 동네 커피 값이 대체적으로 저렴한 편인데 그에 비해 가격이 조금 높다란 생각이 들었다.
젠틀한 사장님은 서빙과 함께 커피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여 주셨다.
친절한 사장님과 향 좋은 커피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10분도 채 안되어 자리를 털었다.
사실 연애 13년 차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앞에 먹을 게 떨어지면 자연스레 자릴 일어나게 된다.
양이 적은 커피가 한몫해 버린 것이다.
의자라도 편했더라면 핸드폰이라도 만지작 거리며 좀 더 오래 앉아있었을 수도 있었겠지.
아니면 이 더운 날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으면 좀 더 오래 있었을까.
히스 씨는 나오자마자 커피 맛이 별로 란다.
"응? 괜찮다며?"
“아냐. 별로인 거 같아.”
사실 커피 맛은 괜찮았다. 주관적으로는 좀 더 맛있었고, 객관적으로도 맛있는 커피였다.
그 뒤로도 커피 볶는 향을 오며 가며 맡았지만, M카페의 문은 열지 않았다.
가끔 카페를 가고 싶을 때는 거리가 멀더라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커피 귀신인 우린 항상 페트병 커피를 박스 째 주문해 놓기 때문에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더운 여름만큼은 얼음 가득한 카페 커피가 절실할 때가 있다.)
항상 지나가는 길목에 M카페가 있기에 사장님과 몇 번 인사를 하는 정도였지만,
발길을 뚝 끊으니 그마저도 민망함에 관두었다.
한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창가 한쪽에 식탁을 하나 들여놓은 게 보였다. 의자도 식탁에 맞는 등받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아파트 단지 손님들이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테이블과 의자들이 전부 바뀌어 있었다.
그 뒤로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드나드는 모습도 보이고, 점심 때는 회사원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드디어 카페라면 항상 보이는 노트북을 세워둔 손님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도 오랜만에 M카페를 다시 찾았다.
커피 값도 주변 시세에 맞게 낮춰져 있었다.
인테리어도 한층 따뜻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린아이가 들어와서 사장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파트 단지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멋진 사장님은 인기가 많아 보인다.
사장님은 카페 앞에도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했는데,
카페 문을 닫은 후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그곳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한 밤중에도 새벽까지도 그 곳은 동네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옆 편의점 손님들도 그 곳을 애용한다.
사장님은 마음이 너그러운 게 분명하다.
그리고 M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골목에도 아기자기한 느낌의 2호점이 생겼는데, 역시나 주 손님층은 아파트 사람들이다. 그곳은 커피보다는 쿠키와 스콘이 맛있다.
아무래도 두 사장님이 형제인 듯하다.
1호점 사장님은 커피를 2호점 사장님은 쿠키를 전문으로 배우신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는 우리였다.
얼마 전에 2호점은 확장이전을 한다는 현수막을 붙이셨는데 지금보다 멀어지면 게으른 나는 쿠키와 스콘을 포기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