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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Apr 19. 2016

살림의 함정

올해와 내년에는 종무식과 시무식을 해봐야지

  아이가 먹다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려고 작은 무선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왔다. 몇 번 바닥을 문지르다 보니 서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보인다.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내고 나니 이번에는 더 넓은 면적까지 뽀얗게 쌓인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가지고 안 되겠군. 큰 진공청소기를 꺼내어 오고 플러그를 꼽는다. 위잉~ 하는 큰소리가 역시 시원하다. 다섯 살 딸내미한테 등 긁어달라고 할 때보다 효자손으로 직접 긁었을 때 개운한 맛이랄까. 마루를 마치고 선 정리해서 돌아보니 부엌은 왜 이렇게 지저분한지. 그래, 하는 김에 방까지 다 해치워야겠다. 

  살림의 함정에 빠진 순간이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휴가 때 하루 이틀 집에서 보낸 선배의 고백이 떠오른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 채비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집안 청소와 빨래 좀 하고 나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 좀 읽을랬더니 금방 아이들 하교할 시간이란다. 본인은 역시 살림 체질이 아니라고. 이어진 댓글들도 비슷하게 공감하는 남편들이 많았다. 


  살림에 체질이 어디 따로 있으랴, ‘살림’이란 간단한 단어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속해 있음을 간과한 탓일 터이다. ‘집에서 노는’ 혹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이들의 생산성이 얼마나 큰 지 액수로 따져볼 필요까지 없다. 잘해도 티 안 나고, 뭐 좀 해보겠다고 덤비면 일이 점점 커지는 마법 같은 일들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미루면 미루는 대로 쌓이면서, 동료와 협업하는 것도 아니니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거니와 돈 한 푼 지불하지 않는 진상 손님들까지 함께 살고 있다면 그야말로 죽을 맛. 어쩌다 한번 돕는답시고 나서서 일만 더 벌리고 온갖 생색은 다 내는 그 족속들 말이다. 가끔 찾아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는 시어머님은 아직 목록에 넣지도 않았다. 

  게다가 성취감도 없어. 모처럼 혼자 낑낑대며 거실 소파를 옮겨 놓고 소파 밑 묵은 때까지 벗겨내면서 뿌듯해하니까, TV 속 연예인들의 집은 어쩜 저렇게 예쁘고 멋지게 꾸며 놓았는지. 

  색시가 퇴근하고 나서 침대 위에 쌓인 빨래들을 보고 혀를 찬다. “빨래 안 개어 놨어?”

  아, 이런 느낌이구나. 

  서운해할 필요 없다. 둘이 맞벌이할 때 늘 늦은 귀가를 핑계로, 나도 집안일을 색시에게 미루면서 저런 말을 무심코 던졌을 테니까. 


  글 쓰면서 딴생각하는 사이에 세탁기에서 알림음이 울린다. 앗, 중간에 섬유유연제 넣는 것을 잊었다. 

  빨래 널어야지.



빨리 아이들이 커야 한다. 나의 신데렐라들.




사진 참조 : pixabay.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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