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4B 연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귀새끼 Feb 23. 2016

못난이 글씨

부끄러운 내 모습 그대로

  오랜만에 글씨를 썼다. 글이 아니라 글씨를 썼다. 편지가 아니고 그냥 조금 긴 메모였다. 급한 순간도 아니었고 다른 책에 있는 글귀를 옮겨 적어야 하는 일이었다. 한참 써 내려가다가 잠시 멈추고 수첩을 바라보았다. 순간 밀려오는 짜증 때문에 볼펜을 던져버릴 뻔했다. 내 글씨가 너무 못생겼다.

 

  나의 글씨체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안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적 바둑 공책 위에 글자를 또박또박 써내려 갔던 시절을 제외하면 그 이후의 글씨는 차마 글씨체 혹은 글자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글씨체에 대한 별로 즐겁지 않은 추억도 하나 있다. 중학교 수업시간에 시력이 별로 좋지 않은 – 안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던 짝꿍이 나의 노트 필기를 보고 선생님의 판서를 받아 적다가 갑자기 화를 내었다. 글씨를 너무 못 써서 못 알아보겠다고. 괜히 무안해져서 그럼 네가 직접 칠판 보고 적던가, 대거리를 했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나도 내 글씨체가 못난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펜글씨 연습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정성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내 몫은 아니었다. 요즘은 캘러그라피를 배우고 활용하는 것이 유행인지 주변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역시 그런 재주꾼들을 부러워할 뿐이다. 어차피 미래는 모두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하는 세상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넘쳤다. 나의 글씨체는 초등학교 때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남겨두는 것이라 호언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조악한 포장이다.


  다시 글씨를 적어 내려가던 수첩을 바라본다. 무슨 말이 쓴 것인지 못  알아볼 글자가 몇 군데 보인다. 이 정도로 망가졌나. 나보다 글씨를 더 못써서 볼 때마다 암호화된 ‘인민군 난수표’라고 놀려준 선배와 내 동생이 떠오른다. 누가 누구를 깔보나. 반대로 예쁜 글씨체만으로도 받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쪽지의 주인도 생각해본다. 글씨는 생각나는데 정작 글씨를 쓴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글씨가 바로 그의 얼굴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참 예쁜 사람들.


  거울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못생긴 글씨만큼 못난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씻겨줄 수 있으면 씻겨주고 싶다. 자음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휘갈겨 쓴 것을 보면 뭐가 그렇게 급한 것일까. 심지어 불안해 보이기까지 해. 괜히 불쌍해진다. 글씨체도 자기관리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주인 잘못 만난 글씨에게 미안하다. 한편으로는 게으르고 무심한 주인에게 날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솔직함이 당돌하기도 하다.  

  

  글씨를 얼굴 삼는다는 것, 글씨에 마음을 담아 전한다는 것,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적어 내려 간다는 의미를 새삼 느껴보고 싶어 졌다. 나를 표현하고 나를 전하는 정성에 더 힘을 쏟아보고 싶어 진다. 교정이 될 수 있다면, 그래 지금부터라도 다시 글씨를 다듬어 보자. 나를 다듬어보자. 






  다음에 서점에 가면 펜글씨 연습 교본을 구입해야겠다. 




이미지 참조 : morguefile.com/

매거진의 이전글 자판기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