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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Jul 05. 2016

보여주지 못한 장기

너의 장기는 아빠가 대신 자랑해 줄게

아빠, 금요일 날에는 각자 장기자랑 하나씩 발표하래.

  큰 아이는 학교 이야기를 집에서 잘 안 하는 편입니다.  저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만 먼저 말을 꺼내지, 그렇지 않으면 물어봐도 잘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평소에 “오늘 뭐 배웠어?”라는 등의 질문을 잘 안 합니다.  오늘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고민이 있나 봅니다. 

  처음에는 뜬금없이 장기자랑 발표를 한다길래 조금 의아해했습니다.  우리 어릴 적에는 소풍이나 가끔 공부하기 싫어지는 시간에 누군가 잘 나서는 친구, 아니면 진짜 노래나 춤에 재능 있는 친구가 나와서 장기자랑을 하곤 했지요.  그런 것을 반 아이들 모두가 하나씩 한다고 하니 놀랐습니다.  아마도 일부러 각자의 개성을 찾고 존중해 주려는 교육의 일환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기나 친구 위로하기가 장기인데, 어쩌지? 


  저는 어릴 적에 잘 나서는 편이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진 않지만 음치보다 잘했고, 춤을 잘 추지 못해도 몸치보다 나았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웃기는 친구들보다는 덜해도 흉내내기나 코믹한 표정과 몸동작을 잘 표현하는 개구쟁이였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장기자랑 시간에는 곧잘 교탁 옆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 저를 어른들은 외향적이고 재주가 많은 친구라 칭찬했을 터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조용한 친구들, 평범한 친구들이었겠지요. 


  그렇게 쉽게 단정지어졌을 수많은 친구 중에 한 사람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은 것입니다. 친구 위로하기가 장기인 친구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데, 정말 본인이 잘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남들 앞에 금방 보여주고 표현할 수 있는 특기만을 칭찬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는 ‘노래 잘하는’ 일반인들을 보면, 대한민국에는 왜 이렇게 가수들이 많은가 싶다가도,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들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계발시켜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찾는 능력은 매우 부족했습니다.  노래 잘하는 아이는 음악을 시키고, 그림 잘 그리면 미술을 시키고, 운동에 소질이 있으면 운동을 가르치고....  이런 뻔한 이야기들 말고 어떤 노력을 해왔었는지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관찰이 필요할 텐데 말입니다.


   저는 아이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친구 위로하기가 장기라는데 그것을 보여줄 방법이란 제 능력 밖입니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팬터마임을 연습해서 친구들 앞에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철든 이후 자기소개서 특기란에 쓸 것이 없어서 늘 고민하던 아빠보다 훨씬 낫습니다.  본인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 기특하고 다행스럽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그렇게 남들에게 금방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것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아빠가 되어야겠지요. 




그래, 내가 대신 자랑하고 다녀야지. 



이미지 참조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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