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의 갑작스러운 확산으로 시작된 재택근무가 이제 100일째로 접어들었다.
원래 우리 집 서재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책상에는 읽다 만 책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평소엔 주로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잡지를 보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 이 곳은 어느새 그럴듯한 사무실로 변해 있다. 원래 있던 꽃병이 옮겨지고 검은색 문서 파쇄기가 자리를 잡았으며 책들은 모두 치워지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모니터 두 대가 설치되었다. 가끔 아내가 조용히 음악을 듣던 블루투스 스피커는 화상 회의용 전용 스피커로 연결되었다.
휴식과 느슨함이 늘 충만했던 이 곳은 결국 삭막하고 쉴 틈 없이 심각한 얘기들을 주고받는 전쟁터로 완전히 변했다. 변하지 않은 건 창 밖으로 보이는 소박한 풍경 정도였다.
물론 집 밖에서도 꽤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다른 세상의 일로만 알았던 인종 차별의 극을 보여주는 사건이 이 땅에서 일어났고 고국에서는 남북한 긴장 정국이 현재 진행형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흑인과 백인, 아시안, 남자와 여자, 구세대와 신세대, 남과 북, 여와 야, 상사와 부하, 갑과 을, 이 셀 수 없는 서로 이질적인 어느 집단에 속해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그 갈등과 긴장 위에 살아가고 있음을 애써 잊어버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분명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쾌적한 자리에 앉아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을 했음에도 저녁이면 설명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뒷목을 짓누르는 그 이유를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 집단 사이의 이질감을 피하기 위해 경계로부터 도망쳐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살고 싶어 하고, 고객님보다는 동료와 좀 더 즐겁고, 동료보다는 친구가 더 즐거운가 보다. 우리가 매일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왔던 이유는 그 경계로부터 가장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택근무의 일상화로 이제 집이란 곳은 새로운 역할을 하나 더 부여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어색한 곳에서 매일매일 치러야 하는 일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있다.
재택근무는 스스로의 본모습을 더욱 잘 보이게 한다. 어느 정도의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받고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는 오히려 축복이다. 반면 보고 받기에만 의존하던 리더들과 상사의 입만 바라보던 사람들은 죽을 맛일 거다. 그들에게는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또 자신의 상사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주니어들은 그 기회가 줄어들게 되니 그 역시 스트레스로 스스로를 억누를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금의 상황과 상관없이 앞으로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겠다는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침내 진정한 일상화가 시작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도구와 감시의 문제가 아니라 미션을 어떻게 정의해야만 일상화 속에서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조직이 종업원을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부터 그 개인이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자율성을 발휘해서 오히려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내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심지어 회사라는 인간이 만든 조직 구조까지...
구글은 대부분의 직원에게 2020년까지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일하라고 했고 집에 근무 환경을 꾸미라고 1000불씩 지원한다.(물론 우리 회사에서도 프린터 카트리지와 인쇄용 종이, 서류 파쇄기, 생일 케이크 배달, 마스크 등 많은 것을 지원해 줬다.) 그리고 순다 피차이 CEO는 사람들이 'human connection'을 잃어버리기 싫어하며 그들의 성공이 그것에서 왔다는 것에 여전히 주목하며 이것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이라고 한다.
업무적인 외로움 또한 풀어야 할 숙제다. 가족이 대체할 수 없는 동료와 함께하는 교감의 본질은 나의 일에 대한 인정과 때로는 비평, 또는 같은 목표를 향해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화상회의가 채워주지 못하는 그 무엇을 우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기술이 해결해 줄지 스스로가 익숙해지기를 기다려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예로부터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매우 흔했다. 이른바 '집에서 부업하실 분'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재택근무는 곰 눈알 달기, 피자박스 접기는 물론 깊은 내면으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야 하는 소설가, 작곡가, 화가 등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런 세계에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는 기업들이 갑작스레 합류했다. 마치 이름도 모르는 아이돌 콘서트에 등 떠밀려 온 중년 남성처럼 '오 이거 뭐 언제 소리를 질러야 하지?'라고 하는 듯 아직 어리둥절하고 어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