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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원 Jun 30. 2020

두통에 좋은 차

나는 아직도 여자를 잘 모른다.

"나 머리가 좀 아파, 애드빌 먹어도 두통이 없어지질 않네, 좀 자러 갈 테니까 두통에 좋은 차 한잔만 갖다 줘"


나른한 햇살이 힘겹게 블라인드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오는 오후였다. 와이프가 이 층으로 올라가며 툭 내던진 이 한 마디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 이런 사소한 부탁을 잘하지 않는 아내였다. 동물적 감각으로 판단해보건대 이건 분명 내게 주어진 뜻밖의 시험이자 기회였다. 임무에 실패하면 며칠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성공한다면 그간 소원했던 냉랭한 분위기를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집에 두통에 좋은 차가 없다면? 그럼 즉시 이걸 구해와야 하는데 여기서 그런 차를 쉽게 구할 수 있을까? 세이프웨이? 트레이더조? 아니면 스타벅스로 가야 하나? 그리고 설령 두통에 좋은 차를 찾아내더라도 과연 그것이 애드빌보다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먼저 두통에 좋은 차의 종류를 구글 검색하니 캐모마일, 국화차, 대추차, 계피 등이 나왔다. 신뢰성이나 과학적 근거를 따질 시간이 없다. 무조건 잠들기 전에 갖다 줘야 한다.

집에 있는 모든 차 종류를 늘어놓고 고르기 시작, 세 가지가 나왔다.

유통기한 확인, 모두 정상

캐모마일과 국화차, 그리고 대추차 중 어떤 게 더 효과가 있는지 다시 검색하는 중...


이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지윤이가 보다 못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우선 물부터 끓여, 그리고 차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아. 아빠가 보리차를 가지고 가도 엄마는 괜찮아질 거야"
"그래도 엄마가 두통에 좋은 차를... 가져오랬는데"
"그런 차가 어딨어? 그냥 아무거나 만들어서 쟁반에 담아서 가, 그리고 이거 마시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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