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글은 없을지라도 배설한 글은 많다. 나름 쓴 글이 많다 보니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쓰면서 예전에 같은 내용으로 썼던 글이 있지는 않은지 찾아본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번뜩이는 재주가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잘 찾아보면 자기 표절일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글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해도 대상에 대한 내 생각과 관념이 바뀌었다면, 내가 어조나 문장 등 글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다른 글이다. 10대의 나, 20대의 나, 지금의 나는 어떤 대상을 주제로 던져준다면 아마 서로 다른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자기 검열에 조금 더 신경 쓰게 된다.
글쓰기는 참 어렵다. 없는 취미에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취미인 척하는 게 글쓰기이긴 하지만 내세우기는 얼굴이 붉어지는 존재다. 내 경험에서 비롯한 걸 써서 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들통나기 쉽다. 직접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남에게 들은 경험도 소재가 되는데 거의 메말라지고 있다. 나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인데 지금 이것저것 굵직한 일을 경험하기는 내가 가진 시간이 부족해 소소한 일에서 뭐라도 건져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다 보니 억지로 공감을 유발하는 글이 늘어나고 있다.
쓰다가 아예 갈아엎고 새로 쓰는 글도 있다. 완전히 포기하는 글도 있다.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쥐어짜도 진전이 없다. 나는 창피함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삭제하는 편인데, 나중에 휴지통을 뒤져도 찾을 수 없으므로 후회하는 일이 잦다. 인내를 갖고 조금 더 붙잡아 볼걸. 지우기 전에 몇 초만 더 고민할걸. 성급한 성미를 가진 과거의 나 때문에 미래의 나는 눈물을 흘린다.
강원국 작가는 글을 쓰는 방법으로 아무 때나 글을 쓰고 쓴 글은 버리지 말고 여러 분야로 나눠 보관하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쓸 일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여도 특정 주제로 글을 쓸 때 해당 분야에 저장해 놓은 글을 읽다 보면 알맞은 문장, 문단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조합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진즉에 그랬다면 좋았을 것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 쓰레기 같은 글도 조금은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또 잊기 전에 순간 떠오르는 생각도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기로 했다. 똥이 금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도 강원국 작가처럼 나만의 창고를 만들어 글을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 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