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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노동요 - 철도 인생

by 와칸다 포에버

사내 메일로 연락이 왔다.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광명역 앞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회사와 협업해 개최되는 거라 회사의 참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하프, 10km, 5km 총 세 가지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어 하프 코스는 못할 것 같아 10km 코스에 지원했다. 한번은 경험삼아 하고 싶었다. 그보다 더 대회에 끌렸던 이유는 기부할 수 있는 기회 때문이었다. 선수가 달리는 거리 1km 당 일정의 금액이 적립돼 기부한다는 말이 끌렸다. 가수 지누션의 션만큼은 아니지만 뭔가 했다는 성취감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원하고 바로 막막했다. 체중 감량을 위해 달린 것이 내 달리기 경험의 전부인데 그때도 7~8km를 겨우 달렸다. 그래서 그 이상 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5km로 바꾸고 싶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신청 후 매주 한 번은 연습 삼아 동네를 달려보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항상 쓰러지듯 잠드는 게 다반사였기에 주말에 그나마 체력이 있을 때 달렸다. 5km만 달려도 금방 숨이 차올랐다. 처음에는 10km를 연습으로 달리려 했지만, 너무 힘들어 대회 때 열심히 달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멈추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것도 아니고 달리다 힘들면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주는 힘들 것 같았다.


대회 날이 되어 택시를 타고 광명으로 향했다.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나름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편히 가고 싶었다. 대회에 대비해 새로 장만한 러닝화를 신었다. 조금이라도 닳을지 걱정돼 대회 전에 한 번도 신지 않았다. 가격이 아주 비싸지도 않고 ‘카본화’라 불리는 신소재 신발도 아니었지만, 평소에 내가 신는 신발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달리기를 위해 만들어진 신발이라 그런지 밑창이 아주 푹신했고 마치 내가 트램펄린 위에 있는 것처럼 통통 튀었다. 이 정도면 내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대회 장소는 참 복잡했다. 개인 출전자부터 가족 단위로 출전한 이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가 요즘 런닝 열풍이라더니 그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마라톤 대회 즐기는 법을 읽은 적이 있는데 행사 부스가 많으니 여기저기 찾아가 선물을 받으면 마라톤 대회 본전을 뽑는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여러 부스가 있지만 즐길 겨를이 없었다. 준비 운동할 공간도 없어 제자리에서 발목만 돌리며 긴장을 풀었다.


경기가 시작되며 가장 먼 거리인 하프 코스 참가자부터 출발했다. 하프 코스 인원이 다 나가고 나를 포함한 10km 참가자들이 준비하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단체로 질서 없이 달렸다면 분명 큰 사고가 났을 것이다. 줄지어 나가는데 저 멀리 선두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 나가는 것이 보이는데 나는 종종걸음으로 내 출발을 기다렸다.


출발한 지 한참 됐는데도 줄이 길어 뛰지 못하고 걷느라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참가자 사이에 틈이 보일 때 조금씩 속도를 내어 앞으로 나갔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계, 작은 가방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차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달리기만 했다. 내가 힘들어도 무조건 달려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힘들면 걸어야겠다고 안심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의외로 잘 달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 신발 덕분이었던 것 같다. 다리가 하나도 아픈 것 없이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것을 보며 내가 토끼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반환점을 돌지도 못했는데 반대편에서 이미 반 이상을 뛰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천히 뛰는 것도 아니고 단거리 달리듯 질주하는 모습이 참 신기할 정도였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을 보니 원래 마라톤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뱁새가 황새 따라 하다 다리 찢어진다고 그렇게 하면 완주하지 못할 것 같아 내 경주에만 집중했다.


반을 지나 7km 정도 달리니 조금 피로함을 느꼈다. 연습할 때도 10km를 달린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달리면 끝난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10km 참가자들이 출발하고 5km 참가자들이 출발했기에 참가자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질서 정연하게 달리는 게 아니라 각자 제멋대로 달리니 사람들을 피해 달리기 아주 힘들었다. 빈틈을 찾아 여기저기 끼어들어 속도를 높이니 완주까지 더 시간이 걸렸다. 아마 계속 직선으로 달렸다면 조금은 더 일찍 결승선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처음 출발했던 시작점이 결승점이었는데 결승점이 보이니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띄니 나도 덩달아 빨리 뛰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바로 앞에 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물을 받아 들이켰다. 완주했다는 쾌감과 갈증을 날리는 쾌감이 겹치니 아주 상쾌했다.


결승선을 통과하면 기록이 문자 메시지로 간다고 해서 핸드폰을 보니 기록 문자가 와 있었다. 50분 36초. 내 첫 10km 마라톤 기록이었다. 여러 변수가 없었다면 조금 더 단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지만, 1시간 대 기록을 노렸던 나였기에 아주 만족스러운 성적이었다.


운동, 취미 등의 목적으로 또 달릴 수는 있겠지만, 기록을 목표로 하며 달리는 일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여러 면에서 성공을 느낄 수 있었던 마라톤이었기에 기회가 생긴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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