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들이 노는 광경을 봤다. 놀이터는 아니고 건물 밑에 꽤 넓은 공간이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제설 작업을 위한 도구를 놓는 곳인데 평소에는 그냥 텅 비어 있었다. 크기도 적당하고 건물 밑이라 비나 눈 맞을 염려도 없어 아이들이 놀기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아이들은 물건을 던지고 놀고 있었다. 문득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 나이였으면 친구들과 말판 게임을 하고 놀았을 것 같다’라고 상상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날씨에 밖으로 나와 간식을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와 다른 세대의 행동을 보며 그들이 나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이라면 나라면 어떻게 살고 행동했을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면 어떻게 살지 가끔 생각하곤 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면 걱정 없이 더 놀고 싶을 때다. 어렸을 때 “걱정하지 말고, 나가 놀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나도 여러 생각할 줄 아는데 무시한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시가 아니라 무한한 배려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보니 놀고 싶어도 놀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더라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더 다양하고 재미있게 놀지를 상상하곤 한다. 내가 노는 데 많이 할애한 시간은 게임하는 데 썼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할 때가 많았다. 어른들의 제한이 나를 보호하기 위함인 것을 모르고 단지 자유를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더 늦게 잠자리에 들어 그전까지 놀고 싶었다. 어린이의 눈으로 봐도 잘못됐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있다. 이를테면 길가에서 흡연하고 함부로 꽁초를 버리는 등 여러 법규를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의아하게 여겼다. 분명히 학교에서 여러 교육을 받았을 텐데. 어른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지 궁금했다.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는 참 재미가 없었다. 정치, 경제 같은 주제로 자기 생각을 펼치는 것은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문을 보더라도 내 관심사는 (아직도 그렇지만) 스포츠였다. 시사 관련 기사는 어렵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9시면 다른 채널을 보자고 해도 뉴스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답답했다. 나이가 들면 맛없게 느껴졌던 음식들이 입맛에 맞는 것처럼 관심사도 바뀌나 보다. 친구들과 만나면 했던 이야기가 예전에는 게임, 스포츠가 주를 이뤘는데 결혼, 돈, 집 등으로 바뀌었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할 줄 몰랐다고 우리 스스로 놀라고 있을 정도다.
더 나이가 들면 노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까. 어떻게 죽을지, 어떻게 내 삶을 정리할지 계획할 것 같다.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고 편히 살고 싶어서 건강이 1순위 걱정거리일 것 같다. 지금도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있는데 그 종류가 늘어나지 않을까. 내가 아프고 싶지 않다고 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오는 질병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노후 준비를 잘해서 체력이 부족한데 더 일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걱정 없을 줄 알았더니 더 태산이다. 행복한 상상이 아닌 암울한 생각만 떠올라 지금 당장 안 해도 될 걱정으로 나를 괴롭힌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