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 주변의 아파트는 두 글자, 세 글자 정도의 이름을 가진 아파트가 많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각종 고급스러운 단어, 외국어를 혼용해 이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유로 지방에 계신 어르신들이 자주 못 오시게 하려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름이 어려우면 그만큼 집을 찾기 어려울 테니까.
요즘은 개명의 대상이 아파트에서 학교로 바뀌는 것 같다. 아파트만큼 화려한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늘 그 자리에 있던 학교가 몇 해를 버티지 못하고 이름이 수시로 바뀐다. 대개 실업계 학교가 자주 이름을 바꾸는 모습을 보인다. 점점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어 학생을 끌어모으려는 방법인 것 같다. 특성화고가 되어 이 학교에 오면 이름에 관련된 업계에 쉽게 들어갈 수 있음을 홍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생존을 위한 하나의 비책 같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점점 학교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든다.
예전만큼 연이라는 것에 신경 쓰는 일이 줄었더라도 고향 사람을 타지에서 만나면 반갑듯 같은 학교 출신을 만나면 반가운 것이 인간사다. 어떤 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전통을 이어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연에 얽힌 집단만 챙기는 것은 보기 안 좋다. 하지만 어떤 연도 단절된 채 서로에 관한 관심이 하나도 없이 사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모습도 정 없어 보일 때가 있다.
학교의 이름이 바뀐다고 학교가 가진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면 그 사실을 알지 않는 이상 그 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의 연결된 끈이 끊어져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게 익숙한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A라는 이름의 학교를 다닌 졸업생과 A가 B라는 이름으로 바뀐 이후 다니는 재학생이 서로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을까.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도 확연히 다르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물론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선배는 후배가 사라지고 후배는 선배가 사라지고 각자의 정체성이 달라지고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
이름 변경을 노골적으로 특정 산업 이름 그대로 붙이는 식으로 하기보다 원래 사용하던 이름 그대로 두되 학교에 어떤 과가 있는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진학 예정 학생들에게 홍보하는 것이 어떨까. 학교의 이름이 그대로 있다면 그곳을 지나가는 졸업생도 그때 추억을 떠올릴 수 있고 이름이 바뀌어 1회 졸업생이 될 재학생들도 선배들을 이어 30회, 50회 졸업생이 되면 더 소속감을 느끼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이름이 바뀐다면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공유할 방안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이유에서든 실향민이 된 사람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한다. 학교가 바뀐다고 해서 그에 비하겠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내 출신이 사라진다는 것은 섭섭함 그 이상의 감정을 느낄만한 일이다. 내가 해당 학교의 졸업생이 아님에도 수시로 바뀌는 학교를 지나다니며 드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