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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보고 충격 받았던 내용의 영화

학교라는 작은 사회

by 와칸다 포에버

국내 소설 작가 중 바로 떠오르는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나는 이문열 작가를 말할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적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 중 하나가 ‘삼국지’인데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쓴 이문열의 삼국지는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처음으로 접한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왔을 때 반가워서 정독했던 기억이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수많은 영웅처럼 이 소설도 제목대로 영웅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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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서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에서 시골 국민학교로 전학하게 된 병태(고정일)는 선생님과 같은 위치에서 반 아이들의 절대적인 맹종을 받는 엄석대(홍경인)를 만나게 된다.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진 병태는 석대를 이겨야만 모든 것이 원상 복귀될 것으로 여기며 석대에게 대항하지만 석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석대의 권력 아래 편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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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정독하고 제목대로 영웅이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영웅은 멋져야 했기 때문이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면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을 책을 통해 직시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돌아보니 소설 속 힘센 이들의 호령하는 모습이 우리 학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보다 더 오래전 일이었음에도 여전한 모습에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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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난 이 내용을 최근 영화로 다시 만나니 원작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요즘에 나오는 작품보다 이전의 작품들이 더 선명하고 실제처럼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급 내 아이들의 모습이 워낙 자연스러웠고 특히 홍경인은 살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석대의 모습을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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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여러 부조리와 문화를 통해 당시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는데 어디나 인간이 모이는 곳이라면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이들이 학교생활을 경험해 봤다면 알겠지만 어린아이가 모인 학교라고 순수함으로 정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자라 사회로 진출하니 사회도 다를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엄석대에 충성을 다하던 아이들이 엄석대가 새로운 선생님에게 당하자 바로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미 사회에서 경험한 유형이 많이 등장하니 경험하기 전이었던 어린 시절에는 충격이었다면 지금 나이에서는 공감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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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태였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도 속절없이 엄석대를 따르지 않았을까. 연고도 없는 곳에 동지도 없이 홀로 내 신념대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빨리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과하지 않아도 조금 더 엄석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김 선생(최민식)의 불 몽둥이세례에 굴복해 또 편을 바꾸지 않았을까. 나 역시 영웅보다는 일개 소시민에 가까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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