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를 플레이하다
비 오는 목요일 아침이다.
비오는 봄날이라 그런지, 문득 에피톤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는 내가 대학교 때 참 좋아했던 노래였다.
봄을 노래하면서도 밝은듯 마냥 밝지 않은 이 노래가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밝지 않은 봄노래를 좋아한다.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에피톤 프로젝트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책, 영화를 알게되는 것이 참 좋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니까.
그의 목소리로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단어를 들었을때도 참 신기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은 첫 정규앨범 <긴 여행의 시작>이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가 수록되어있는 앨범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다시 플레이를 하니, 비오는 봄날 아침에 참 잘어울리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부터 좋은 노래도 참 많다.
'긴 여행의 시작'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희망고문'
'꿈에 네가 보인다'
'간격은 허물어졌다'
'편린일지라도, 내 잃어버린 기억'
'환절기'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게 느껴졌다.
20대 초반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한없이 같은 사람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
행간을 살짝 비켜 침묵하고 있는 곡 만든 이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가사 문장의 여백을 메꿀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
20대의 나를 스친 많은 사람들, 20대의 내가 겪어낼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일들...
난 분명 이 앨범의 노래들을 플레이했을 뿐인데, 내 머릿속에는 지난 20대의 내가 플레이되고 있었다.
서툴고, 방황하고, 치열하고, 당장의 내 마음만, 눈앞의 것만 보고 달려가다 상처받고 상처주고 아파했던 그 시절의 시간들.
마음이 쌉싸름하게 아려오는듯 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앨범을 '명반'이라고 부르는거겠지.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