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년 전 즈음, 나는 시를 써서 작은 상금을 받았다. 아마도 그 돈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스스로의 능력으로 번 돈이었을 것이다. 사춘기 소녀는 이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의미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집을 사기로 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마땅한 결정이었고, 지금 돌아봐도 훌륭한 판단이었다. 그때 산 책은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였다.
십이년이 흘렀고, 나는 운좋게도 또 한 번 시를 써서 상금을 받게 되었다. 나는 십이년 전이 떠올랐고, 역시나 마땅히 시집을 사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산 책은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이었다. 나는 이 초판본의 표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마찬가지로 십이년 전에 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새로 지은 도서관 이름을 공모했던 것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이 책의 초판본 표지를 보게 되었고, 도서관 이름 공모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책>이라는 이름을 써내었다. 하지만 내 의견은 도서관 이름으로 삼기엔 꽤나 감상적이었나보다. 당시 선정된 도서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써낸 것 보다 짧고 밋밋한 이름이었다는 건 기억한다(삐뚤어질테다).
내가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나온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초판본을 살 수 있었던 건, 출판사 소와다리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그들이 초판본과 똑같은 표지, 똑같은 내지, 심지어 윤동주 시인이 직접 쓴 초고까지 그대로 복사하여 새 책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비록 복사본이지만 나는 진짜 초판본을 갖게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의 시 <별헤는 밤>은 초등학교 때 추억돋는 한컴타자연습에서 완성하기 쉬운 짧은 글로 사랑받았고, 중고등학교 때는 <서시>, <자화상>, <십자가>와 같은 시들이 교과서에 줄줄이 실리며 우릴 괴롭히기도 했다. 더불어 국어선생님들은 윤동주의 시를 수업할 때마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그가 시를 쓰는 방식의 신묘함를 언급하시며 우리의 흥미를 끌고자 했다. 그의 벗 정병욱의 말에 따르면 윤동주는 실제로 수정이나 퇴고를 거치지 않고 한번만에 시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시집을 사면서 윤동주 시인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윤동주 시인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윤동주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도대체 왜 지금껏 그가 몸이 약해서 일찍 병사하였거나 그의 시에서 보이는 고뇌 같은 것들 때문에 스스로 생을 뒤로하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의 시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훌륭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일본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있다가 일본에 의해 생리식염수 생체실험을 당해 살해당한 것이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윤동주는 생전에 매우 건강했다고 한다. 윤동주와 함께 옥에 갇혀있었던 외사촌 형이 윤동주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윤동주의 당숙에게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말했고, 80년 현대문학지에서는 일본시인이 윤동주와 송몽규가 혈액대체 실험을 위한 실험재료로 쓰여서 사실상 살해당했다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고 하니 통탄스럽고 분노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0년 해외봉사로 연변지역에 갔을 때, 중국 용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용정중학교와 그의 생가가 있는 명동촌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용정중학교 기념전시관에서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북간도에 자리잡게 된것이며 당시 사회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알게되어 매우 인상에 남았었다. 지금 돌아보니 근처인 윤동주 시인 묘소까지 가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그는 해방을 6개월 남겨두고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광복을 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윤동주는 대학졸업기념 시집을 간행하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당시는 문학에 대한 감시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출간을 미루었다. 속상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흔쾌히 미루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가능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을때 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일본은 아직 시도 발표하지 않았던 어린 윤동주가 이렇게 위대한 시인이 되리라는 걸 알고있었던 걸까. 일본만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훌륭한 시들을 우리 곁에 남겨주었을 것이다. 일제의 횡포에 화가 나고, 그가 태어난 시대를 슬퍼할 뿐이다.
오는 16일은 윤동주 시인 사후 71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에 맞춰 그의 짧은 일생을 담은 <동주>라는 제목의 영화도 개봉되나보다.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