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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기 Feb 01. 2016

무진기행

젊다는 것의 참혹함에 대하여

순천여행을 다녀왔다. 젊은이들을 위한 기차여행 할인패스 '내일로'의 성지이기도 하다는 이곳은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중소도시다. 순천에 대해 알아보다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순천이라는 사실을 접했다. <무진기행>은 교과서에서도 접한 작품이었지만 당시의 내게는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그땐 소설 특유의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싫었다. 10대 소녀에게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류의 낭만소설이 더 멋지게 와닿았다. 20대 후반의 내게 <무진기행>은 여전히 칙칙하고 어두웠지만, 동시에 엄청난 작품으로 다시 다가왔다. 그것은 젊음의 흔적인 것일까, 아니면 나이듦의 흔적인 것인지?


순천만은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순천만에서의 일몰은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이 무진의 명물이라고 했던 안개와 겹쳐져 특유의 차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뽐냈다.


안개 낀 풍경의 아름다운 순천만 일몰


나의 순천행은 <무진기행> 덕분에 그 의미가 한층 깊어지는듯 했다. 나 역시 주인공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새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무진을 향하며 회상한다.


내가 나이가 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많은 이들이 젊음을 찬양한다. 물론 젊음은 충분히 찬양할만한 가치있는 무언가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젊음이 항상 찬양할만한 것들로 가득차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젊음이 나의 것일 때에는 더더욱. 젊음은 어떤 면에선 참혹하다. 그것이 사랑 때문이든, 일 때문이든, 혹은 자아와의 불화때문이든 간에. 그 참혹함을 겪어내고 다시 또 무언가를 위해 애쓴다.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 젊은이는 뭔가 모르게 처음과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서야 스스로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또 실패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젊음이다. 그렇게 젊음은 무지에 휩싸여있다. 때문에 젊은이는 자신이 대면한 순간순간이 절망스럽다. 작가 김승옥은 자신의 소설에 이러한 젊음의 참혹함을 담아낸다. 그 핵심은 자신을 너무 모르거나 너무 잘 알아서 불화하는 화자다. 젊은이는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을 잘 모르기에 자기 한계의 최대치를 추구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결국엔 삶의 무게나 과거의 중력, 나약한 의지, 속물적인 욕망, 천박한 사회 등 다양한 요인 탓에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자기자신을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김승옥의 세계엔 바글거린다.



소위 말하는 빽 좋고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한 <무진기행>의 주인공은 제약회사를 소유한 장인의 사위로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스러워할 틈도 없이 바빴던 주인공은 장인과 아내의 권유로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가 몇일 쉬기로 한다. 무진에는 성공해서 지역 세무서장으로 일하고 있는 동창생도 있고, 서울에서 내려온 동료 선생을 짝사랑하고 있는 후배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도 사랑하게 되어버린 후배가 짝사랑하는 처자 하인숙도 있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뻔한 불륜스토리로 보이는 주인공의 기행(紀行)을 기행(奇行)으로 오해할만한 소지도 있다. 그러나 작가 김승옥은 특유의 감성적인 필체와 깊은 통찰력으로 주인공의 무진행을 젊음에 대한 이해로 승화시킨다. <무진기행>의 마지막 장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는 젊음과 현실을 잇는 소설의 백미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주인공은 급히 서울로 돌아와달라는 부인의 전보에 하인숙에 대한 감정으로 갈등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하인숙과의 감정은 무진에 남겨둔 채 부인이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 더이상 주인공은 무진에 살던 과거의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10대의 나는 윤리적으로는 주인공의 선택이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주인공에게서 '나쁜남자' 딱지를 떼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십대 후반의 나는 더 이상 주인공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은 젊음의 흔적일지도, 혹은 나이듦의 흔적일지도. 문득 감정이란 얼마나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것인가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순천을, 젊음을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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