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stlecake Feb 14. 2019

달빛 아래 달랏 드라이빙

친구를 마중하러 달랏 공항 가는 길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자, 베트남 여행에 잠시 합류하러 한국에서 오는 친구와 달랏에서 만나기로 한 날. 공항으로 마중가는 길이다. 무슨 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공항 셔틀버스가 있다길래 물어물어 버스에 탔다.


여기 처음 여행 온 주제에 누군가를 마중하러 공항까지 간다는 건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로컬의 탈을 쓴 여행자라고나 할까...  저녁 8시 조금 넘어 출발한 공항 미니버스에 승객은 나 혼자. 운전기사님이 조수석에 앉으란다. 어차피 승객은 나 혼자고, 나도 시야가 탁 트인 조수석에 앉아 드라이브하는 게 좋아서 냉큼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고속도로같이 뻥 뚫린 길을 조금 달리시더니 담뱃갑을 집어 들고는 나한테 내민다.

왠지 엄청 독할 것 같은 아저씨 담배.


뭔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드라이브 씬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서 담배를 한 개비 집어 들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쥔 손을 열린 창틀에 걸치고 기사님과 맞담배 피(는 척하)며 공항 가는 길.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 저 달은 초승달.

안전벨트도 없는 공항버스, 승객은 나 혼자.

핸드폰 통화하면서 담배 피우면서 운전하는 기사님 이름은 티티.

티티가 피는 담배 이름은 사이공.


묘하고 재밌다.


랭니, 어서 와. 나랑 여행은 처음이지?












 바리스타 랭니, 망고 잘 깎는 랭니 (내가 깎으면 손이 망고주스 범벅이 되어버림), 엉킨 실 잘 푸는 랭니, 길 잘 찾는 랭니게이션.





  (베트남에서) 영어로 좀 따질 줄 아는 나, 아무거나 잘 먹는 나, 멀미 안 하는 나, 계획엔 약하지만 임기응변엔 강한 나, 낯선 여행자들과 잘 노는 나.




  이런 우리가 얼마간 같이 베트남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당장 오늘 밤 어느 숙소에 묵을지부터 시작해서, 뭘 보고 뭘 할지, 뭘 먹을지, 떠날지 하루 더 머물지, 내일은 어디로 갈지, 매일 매 순간이 선택의 고민이다.

  나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와중에,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한다는 건 부담이 배가 된다. 그 순간의 선택과 결정들이 모여 이 여행을 이루고, 내 삶을 채울 걸 생각하면 명쾌하지가 않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때,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어느 선택이든 나는 다 감당하고 잘 해낼 수 있어. 그런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된다.









  달랏에서부터 시작된 악천후, 필리핀 태풍 피해, 베트남 남쪽은 태풍 영향권으로 60만 명 대피.

  겪어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동남아에서 패딩 입고, 숙소 침대에서 침낭 속에 잠드는 베트남 날씨, 비와 구름과 바람. 여행 계획과 바람도 그 바람에 사정없이 헝클어져 버렸다.

  어찌어찌 달랏을 나와 나짱(바닷가 작은 동네)에 왔지만, 해를 보기 힘든 날씨는 여행자를 무력하게 만든다. 더운 나라인 줄만 알았던 베트남에서 예상 밖의 날씨로 고생하다, 더 더운 나라 태국으로 가자고. 일정을 뒤집고 온갖 도시의 기상 예보와 이동 경로, 비행 편까지 빠르게 검색하고 머리를 맞대 본다.

  다시 남쪽 호찌민으로 가서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타자, 내일 호찌민으로 가는 심야 버스를 예약했다가 내가 샤워하고 나온 사이 날씨를 검색해 본 친구는, 2주 후면 나아질지도 모를 하노이 날씨를 기대해보자며 그렇게 일정을 원위치시켰다. 심야버스 캔슬, 일단은 나짱에서 하루만 더 쉬고, 북쪽으로 향하자.





  나짱을 떠나기 전 숙소 스태프들의 추천 한 마디에 나이트 버스로 호이안 가는 도중 자정 12시 20분에 예정에 없던 뀌년에 내리는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와이파이도 아무 계획도 없이 한밤중에 낯선 곳에 내려 결국은 문이 닫힌 숙소들 문을 두드리며 잘 곳을 찾아 헤매는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렇게 들른 뀌년은  베트남 일정 중 우리의 최애 장소가 되었다), 호이안에서는 고작 1박만 했지만 새해 카운트다운과 함께 미친 듯이 춤추는 사람들 무리와 섞여 무아지경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었던 것도, 혼자가 아닌 동행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파란만장 달랏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