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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3세’ 영국판 계유정난 주인공은 폭군이었을까?

영화와 드라마로 대중에게 이름을 날렸음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고 주기적으로 다시 돌아오곤 하는 배우들이 있다. 황정민은 이들 배우 가운데 하나다.      


4년 만에 무대화된 황정민 주연의 연극 ‘리차드3세’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기인한 연극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왜 리차드3세가 악인으로 방점이 찍혀 묘사되는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조카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실제 역사를 감안한다면 리차드3세는 영국판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른 것과 마찬가지인 인물이다.     

추가로 셰익스피어는 리차드3세의 혈통인 요크 왕조와는 거리가 먼 작가다. 셰익스피어의 정신적인 정체성이 요크 왕조가 아니라 튜더 왕조에 기인하기 때문. 15세기 헨리7세가 리차드3세를 물리치고 장미전쟁을 마무리함으로 영국 왕실은 요크 왕조 대신에 튜더 왕조가 정체성을 잇는다.      


셰익스피어는 장미전쟁 이후 튜더 왕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작가였다. 정신적인 기반이 튜더 왕조에 기인한 셰익스피어의 입장에선 요크 왕조의 마지막 혈통을 계승받은 리차드3세를 미화하거나 애석해할 당위성이 전혀 없다.      


이에 실제 역사로는 영국판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튜더 왕조에 정신적 뿌리를 둔 작가의 역사관이라는-작가의 사관과 역사적 팩트,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무대에선 리차드3세가 폭군으로 묘사된다.     


연극 ‘리차드3세’의 캐치프레이즈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희대의 악인인가, 비운의 희생양인가.” 해당 캐치프레이즈에서 후자의 문구 “비운의 희생양”에 주목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튜더 왕조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던 셰익스피어의 윤색을 덜어내고 실제 리처드3세의 공적도 있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리차드3세의 형인 에드워드4세의 두 아들을 런던 탑에 가둔 다음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의 왕위 계승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해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 조카가 알고 보면 사생아일 가능성이 높았다는 악성 루머를 뿌린 실제 역사는 리차드3세의 통치적 과오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리차드3세가 왕위에 오른 다음에 발표한 공법15개조는 기존의 영국 왕들과 달리 백성을 위한 수혜를 베풀고자 하는 정책으로 리차드3세의 치적에 해당하는 업적이다. 이를테면 “죄수가 사권을 박탈당할 때까지 어떤 공무원도 그의 재산을 빼앗을 수 없다”는 죄수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한 조항은 공법15개조에 내포된 위민정책 가운데서 한 사례에 속한다. 후자의 업적에 방점을 둔다면 리차드3세를 바라봄에 있어 마냥 폭군이 아니라 “비운의 희생양”으로도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클래런스 공작의 실각에 뒤이은 앤의 결혼 역시 셰익스피어의 각본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선 순서가 뒤바뀐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앤의 결혼이 시대적으로 앞선 역사다.      


앤이 리차드3세에 의해 살해됐다기보다는 결핵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영국 역사학자의 관점도 존재하기에, 연극 ‘리처드3세’에서 묘사된 사건들을 액면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형 에드워드4세의 두 아들을 리차드3세가 유폐시킨 것은 맞으나, 왕위 찬탈을 위해 두 조카를 제거했다는 설은 헨리 스태퍼드 공작이나 장미전쟁의 승리자이자 튜더 왕조 혈통인 헨리 7세에 의해 윤색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튜더 왕조엔 우호적인 반면에 요크 왕조를 바라봄에 있어선 우호적일 수가 없었던 ‘리차드3세’의 집필 작가 셰익스피어의 관점을 감안하면서, 동시에 리처드3세가 백성을 위해 마련한 법안인 공법15개조라는 치적을 살핀 다음에 해당 공연을 관람한다면 리차드3세가 극의 방점에 다다라 묘사되는 것처럼 마냥 “희대의 악인”이라기보다는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디어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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