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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 전작보다 나은 속편의 모범사례

한 작품이 히트하면 후속작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는 감독이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실망시키기 바쁘곤 했다. 이는 한국영화 감독뿐만 아니라 해외 감독에게도 적용되는 대다수의 딜레마로, ‘디스트릭트9’ 이후 ‘채피’로 관객과 평단에게 실망을 안긴 닐 블롬캠프 감독 등이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최근 관객에게 공분을 산, 각본 함량 미달작인 ‘토르: 러브 앤 썬더’도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와 비교하면 적합한 사례에 포함된다. 함량 미달의 각본을 승인한 디즈니의 패착으로 말미암아 토르 시리즈는 이번 신작으로 ‘토르: 다크 월드’ 수준, 아니 그 이하로 회귀하고 말았다.    

하나 오늘 소개하는 ‘한산: 용의 출현’의 메가폰을 맡은 김한민 감독의 경우는 대척점에 해당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터미네이터 속편을 전작보다 일취월장하게 이끌어낸 사례와 매한가지로 김한민 감독은 ‘한산: 용의 출현’ 연출을 전작보다 매끄러우면서도 섬세하게 가다듬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필자는 김한민 감독의 전작 ‘명량’을 분석하는 작업을 포기할 정도였다. 그만큼 완성도에 있어 필자의 고개가 갸웃할 정도였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 언급되는 한산대첩은 한국사 3대 대첩에 속할 정도로 규모가 큰 전쟁이면서 동시에, 영화는 우리가 잘 아는 듯한 기시감의 착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순기능을 제공한다. 한국사 수업을 통해 한산대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접하긴 해도 해당되는 역사적 사건이 한국사에 있어 얼마만큼 중요한 사건인가에 대해, 당시 백년 이상의 내전을 통해 실전으로 다져진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인 일본군을 상대로 이순신 장군이 어떤 전법을 구가했는가에 대해선 사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구체적인 역사적 기억이 전무하다시피한 대중에게 영화는 적절한 환기를 부여한다.      


‘한산: 용의 출현’이 대중의 흥미를 북돋는 시점은 해당 역사적 사실이 드라마로 방영된 시점과 상당 기간 시일이 있다는 점에 있어 의미가 깊다. 상술하면, 대중에게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된 김명민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은 2004년작이었다.      

이보다 선례를 따져보면 배우 김무생이 이순신 장군 역을 연기하는 ‘임진왜란’이 1985년작임을 감안하면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은 ‘불멸의 이순신’과 ‘임진왜란’의 기시감으로부터 해방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만일 개봉 이전 십 년 내에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대중매체가 대중에게 공개됐다면 ‘명량’이 천 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대중이 이미 콘텐츠를 통해 접한 임진왜란이라는 소재를 ‘명량’이라는 영화로 영화화했을 때 ‘국뽕’을 체감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을 비켜갈 수 있었기에 ‘명량’이 신선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 둘 다 대중적으로 히트한 콘텐츠가 십 년 이상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공백기에 있었기에 대중으로부터 ‘신선함’이라는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었지, 만일 ‘임진왜란’이나 ‘불멸의 이순신’ 모두 ‘명량’의 개봉 시일인 2014년과 근접했다면 당시와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어려웠을 테다.      

‘한산: 용의 출현’이 ‘명량’ 대비 흥미로운 점은 전작의 배우들과 연기적 기량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단 점이다. 이순신을 연기하는 배우에 있어 ‘명량’의 최민식이 구루지마(류승룡 분)의 목을 베는 식으로 폭발하는 카리스마를 어필했다면, ‘한산: 용의 출현’ 속 이순신 장군인 박해일은 가장 좋은 타이밍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하는 '전략가적 기질'을 스크린 밖으로 폭발시키는데 있어 성공하고 있다.  


적을 섬멸하기 위한 가장 좋은 타이밍을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박해일의 연기는, 저격수가 가장 좋은 저격 타이밍을 갖기 위해 최대한으로 기다리는 태도와도 같다. ‘한산: 용의 출현’이 묘사하는 이순신 장군을 보면 일본의 적함 성능보다 월등한 거북선의 성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닌, 전략이 한산대첩의 승패를 좌우한 점을 되새기게 만든다. 


전함의 성능에만 기대는 아닌, 적장의 허를 찌르고 무기의 사거리를 효율적으로 산출한 '전략'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 연출이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순신 장군의 진가를 빛나도록 만들었다. ‘한산: 용의 출현’ 이후 후속작에선 이순신 장군 역으로 김윤석이 연기할 예정이라 하니 각 배우들이 이순신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하는가 하는 묘미를 삼부작을 통해 감상할 재미도 쏠쏠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영화 속 묘사가 전부는 진실이 아니란 점을 말미로 다루고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변요한이 연기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영화에서처럼 끝맺음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노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스리는 시대까지 생존해 자택에서 자연사를 하는 인물로, 관객이 영화에서 다뤄지는 실존 인물의 캐릭터 묘사를 역사적인 사실로 전부인양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역사적인 사실만 다루는 게 아니라, 사실과 픽션이 영화 안에서 공존하기 때문이다. 영화 대사 가운데 '세작'처럼 요즘 현대인들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옛 어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자막으로 첨언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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