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열다섯 번째.
누구나 길거리에서 한번 정도는 만났을 법한, 도를 아십니까의 그들. 사람들은 그들을 도인이라 한다. 홍대 거리에는 그런 도인들이 많다. 한 번은 홍대 정문의 스타벅스에서 작업 중 옆자리의 여자분이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그녀 또한 도인이었는데, 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러 왔단다. 멀끔한 정장 차림에 평소 마주치는 여느 때의 도인들과 달라서 마침 작업도 잘 되지 않던 차에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보면 때때로 그 사람이 공부한 학문의 깊이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노트 한 면을 가득 채우며 논리 있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제법 놀랐다. '이렇게 설명을 잘하시니 소위 도인분들의 간부 정도 되시나 봐요?'라는 내 질문에 그녀는 그저 회사원일 뿐이며,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 했다. 한참 동안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핸드폰 충전이 다 되었다며 그렇게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일주일 동안 네 번이나 길에서 마주쳤고, 마지막 한 번은 자기도 무안했는지 모른 척 지나치더라.
살고 있는 이 홍대라는 곳은 하루에도 몇 번을 마주칠 정도로 도인들이 많았다. 지하철역, 길거리뿐만 아니라 카페 안에서도 종종 말을 걸어왔다. 그 방법도 아주 다양한데, '얼굴에 불의 기운이 가득해요', '조상님 덕을 많이 보시네요'는 이젠 식상하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사탕이 있는데 한번 먹어봐 주시고 어떤지 말씀 좀 해주세요. 방향제 매장을 열려고 하는데 어떤 향기가 좋은지 하나만 골라주세요라던가, 미술치료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나무를 하나만 그려주세요 등.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그들의 방법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 나는 종교에 특별한 편견은 없지만, 강요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며칠이 지나 같은 카페. 누군가 슬쩍 옆에 앉아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네며, 자신은 만화를 그리는 학생이라 했다. 괜찮다면 잠깐만 부탁을 해도 되겠냐고, 자기가 그린 캐릭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두 개만 골라 달라며 두꺼운 바인더 북을 펼쳐 보였다. 전에도 비슷한 방법의 도인을 만나 본 적이 있어 못 들은 척하려 했지만, 마침 무료하던 차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나만 골라주었다.
“그냥 이게 제일 나아 보이네요”
내 시큰둥한 반응에 더 이상 말을 잇기가 멋쩍었는지 그는 천천히 일어나 카페를 나가버렸다.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만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나 봐. 그림체를 보니 이제 시작한 것 같았는데,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 심정이 어땠을까 갑자기 너무 미안했다.
P.S. 사실 가장 괜찮은 하나의 캐릭터보다도, 한 장 한 장 정성이 느껴지는 그림들이어서 좋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꿈을 이루고 계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열다섯 번째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