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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Jan 10. 2024

재능에 대하여 1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 (8-1)

나는 타고난 몸치였다. 아니, 여전히 타고난 몸치이다. 나에게 운동이나 움직임을 가르쳐 보았던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인정할 것이다. 스무살부터 올해 서른 셋이라는 나이에 접어든 지금까지 꽤 많은 운동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접해 보았다. 수영, 요가, 사이클, 런닝, 무용, 스쿠버 다이빙, 서핑, 필라테스, 발레, 복싱, 주짓수, 종합격투기까지. 운동 종목에 따라서 내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운동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운동도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그 어느 운동도 처음부터 타고나게 잘했던 운동이 없었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이 모든 운동에서 '재능있네' 라는 소리를 적어도 한 번씩은 들어 보거나, 기록을 내거나, 스스로 느껴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재능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재능'이란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능력을 재능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십대 전까지 운동이나 움직임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스무살이 되고 처음 운동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시작했을 때 절망스러웠다. 내가 끔찍한 몸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그렇기에 체력도 약해 조금만 외출을 해도 피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런 상태로 이십대를 맞이했다. 거울 앞에 섰는데 왠 뚱뚱하고 못생긴 찐따 여자애가 서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운동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아빠가 더 젊어 보여…
찐따미 팍팍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요가였다. 처음에는 요가하러 가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동작을 아무리 따라해도 모르겠고 내 몸은 뻣뻣하기만 했고 이런 운동으로는 살이 죽어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심 요가 선생님들의 탄탄한 몸매를 그리며 시작했던 요가였으나 천년 만년이 지나도 그런 몸매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천상의 몸매인 것만 같아 요가하러 갈 때마다 자괴감에 괴로워했다. 나는 정말 요가 재능 빵점이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요가를 다니다가 운이 좋아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운동으로 다이어트와 몸 만들기에 성공한 적이 있던 그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요가를 더 열심히 했다. 거기에 더해 아침저녁으로 한시간 남짓 등하교 길을 자전거로 통근하기 시작했다. 새벽요가와 자전거 통근으로 매일매일 체력이 후달려 낮시간에는 밀려오는 졸음에 시달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어느 순간 살이 빠지고 몸매가 정돈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즈음 요가가 단순히 몸매를 관리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를 할 때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요가를 하고 나면 자연스레 클린한 음식을 찾게 됐다. 그리고 동시에 요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는 날들이 많아졌다. 주변에서 요가 강사 자격증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종종 받았다. 남자친구도 건강해지는 나의 모습을 좋아해 주었다. 몸치였던 내가 이런 말을 듣다니 아주 감개가 무량했다. 그렇게 요가를 자연스럽게 반복하게 되었다.


요가를 마중물 삼아 다른 운동들에도 도전해보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운동을 접할 때의 공포감이 조금 줄었다고 해야겠다. 대학원을 다니며 마라톤과 사이클과 수영을 강제로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지도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우리 실험실은 우스갯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양돈체육학과'라고 불릴 정도로 지도교수가 운동을 막무가내로 시키기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매일 런닝과 사이클과 수영을 번갈아가며 했다. 80 km 혹은 120 km 사이클 대회와, 하프 마라톤 대회, 그리고 철인 3종 경기에 주기적으로 참여해야만 했다. 쉽지 않았지만 지도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요가와 통근 자전거로 쌓아 온 체력이 있어서였을까, 완주하지 못한 경기들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완주도 하게 되었고 그런 훈련들이 반복되자 기록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도 철학 흥신소에서 만났던 언니의 소개로 무용과 무브먼트를 접하게 되었다. 첫 시작은 요가와의 접점이 많다는 점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오직 '운동' 의 개념으로만 접했던 움직임의 범위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아크로바틱, 애니멀 플로우, 현대무용, 그라운드 플로우, 접촉 즉흥, 발레, 로프 무브먼트 등등 어떤 언어로 카테고리화 할 수 있는 움직임부터 해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다양한 움직임들까지 접해보면서 '몸을 쓴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함께 수업을 듣던 언니와 친구들과 선생님과 부대끼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수업을 들으면서 몸의 자연스러운 방향성 (이를테면 왼쪽 오른쪽 신체의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관절과 근육의 흐름 같은)을 내 몸이 모른다는 느낌을 굉장히 자주 받았다. 예를들면, 인간이 자연스럽게 걸을 때 오른손과 왼발을 교차시키며 걷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그런 움직임을 할 때에 오른손과 오른발이 함께 나가는 바람에 꼬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나의 몸치 특성은 격투기를 접하게 되면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격투기에 대해 내가 감히 무어라고 평하기엔 경력이 짧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게 수련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격투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격투기의 본질은 '자유로움' 인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타자를 상대로 나의 움직임과 폭력성을 형식이나 제한 없이 극대화시키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격투기는 '몸을 쓰는' 행위의 '본질'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타자와 가장 원초적으로 교감하는 행위이니까.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는 틀림없이 재능이 없었다. 나는 정해진 순서가 반복되고 타자가 없는 운동 (수영, 요가, 마라톤 등) 에서만 그나마 희미하게 두각을 나타낼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이 잘 되나, 못 되나, 컨디션이 좋으나, 나쁘나, 이기나, 지나 상관없이, 그냥 닥치고 나가서 쉐도우를 하고 샌드백을 치고 기술 연습을 한다. 때론 더 밀도 높게 혹은 낮게 연습이 되더라도 적어도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수련과 수행을 대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음 가짐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거나 실력이 늘었다는 말을 듣는다. 나보다 운동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나 선수 분들에게 칭찬도 가끔 듣는다. 체력이 늘고 기술과 스파링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생긴다.


다른 건 몰라도 무엇을 하든 나는 체력이 좋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 저질 체력이었던 나였는데 나는 체력이라는 분야에서 재능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요가에 '요'자도 모르던 나였는데 요가 자격증을 따 보라고 제안을 받았던 나는 요가에 대한 재능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늘 몸치라고 놀림받던 나였는데 무용 선생님에게 "어렸을 때부터 무용 했으면 잘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재능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격투기를 할 때 늘 손발이 꼬이고 몸의 느낌을 깨우치지 못해서 좌절하지만, 조금씩 자세가 나아지고 생활 체육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는 나는 재능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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