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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Feb 12. 2024

붉은 거북 (The Red Turtle, 2017)

미카엘 두독 드 비트 (Michaël Dudok De Wit)

한 남자가 무인도에 표류된다. 남자는 무인도를 둘러보며 식수와 음식을 구하기도 하지만, 완벽한 무인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탈출을 시도한다. 무작정 뗏목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지만 번번히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뗏목은 부숴지고 만다.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점점 더 크고 튼튼한 뗏목을 만들지만 계속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 날 뗏목을 끌고 바다로 나간 남자는 뗏목을 부순 것이 다름아닌 커다란 붉은거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가 난 그는 어느 날 뭍에 나와 있는 붉은 거북을 뒤집어서 햇볕에 말려 죽인다. 남자는 붉은거북의 시체 곁을 밤새도록 지킨다. 그날 밤 붉은거북은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남자는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뤄 섬을 아름답게 가꿔 나간다. 그들은 아이에게 수영하는 법과 음식을 찾는 법을 가르치고 세상에 대해 알려주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아이는 점점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나 평화로운 날들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느 날 커다란 해일이 섬을 강타한다. 가족은 힘을 합쳐 망가진 섬을 복원한다. 엄마 아빠를 보살펴줄 만큼 성장한 아이는 이제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한 여성과 남성으로 바라본다. 아이는 거북들과 섬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는 섬에 남아 평화롭고 조용한 노년을 함께 보낸다. 별이 가득한 밤 남자는 모래사장에 누워 죽음을 맞이한다. 여자는 남자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한다. 여자는 다시 붉은거북이 되어 바다로 돌아간다.




우리집은 그런대로 넉넉한 중산층 집안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 부모님은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작은 불화들이 없진 않았지만 화목한 가정이었다. 나는 경제적인 지원과 심리적 안정감같이 유년시절 가장 필요했던 것들을 부모로부터 충분히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나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에게 가족은 '섬'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회색빛의 죽어있는 콘크리트에 파뭍혀 서서히 질식해가는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나는 '가족' 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억압과 통제가 싫었다. 가족이라는 '섬' 밖에는 눈조차 돌리지 못하게 하는 부모가 싫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 "아무도 믿으면 안돼. 가족만이 너를 지켜줄거야". "너는 나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섬'에 머무르는 내내 부모는 나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불도장으로 살갗을 찢어 상처를 내고 각인시켰다. 사랑하면서 어떻게 나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지 예전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그 상흔을 그토록 뜨겁고 선명하게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섬'을 탈출하고 싶었다. '섬' 을 벗어나려면 영화 속의 남자처럼 '뗏목'을 만들어야만 했다. 작고 엉성했지만, 뗏목을 만드려는 시도들을 했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돈을 벌어 생활했고 외국에 나가서 1년동안 살아보기도 했다. 더 큰 뗏목을 만들기 위해 나는 해외 유학을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붉은거북'을 만났다. 철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일구고 있는 작은 섬을 만났다.나는 그 '붉은거북'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나의 '붉은거북'은 미처 완성되지도 않은 나의 뗏목을 부숴버렸다.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붉은거북'은 나를 다시 '섬'으로 돌려보냈다.


2022년 12월 두물머리에서


놀랍게도, 다시 돌아간 '섬'은 예전의 회색빛 '섬'이 아니었다. 나의 '섬'에는 이제 바다 건너 떠 있는 작은 섬에서 놀러온 사람들, 그들이 나눠준 맛있는 음식, 웃음과 눈물, 그리고 온기가 있었다. 종종 내가 그 작은 섬에 놀러가서 거기에서 몇날며칠을 머물기도 했다. 영화 속 남자가 붉은 거북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던 것처럼 나의 섬은 오렌지빛의 따스한 섬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의 '섬'과 작은 섬에 내가 초대한 손님, 해일이 찾아왔다. 해일이 휩쓸고 간 나의 '섬'은 풀 한포기 자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모지 무인도 같았다. '붉은거북'은 나의 '섬'에 이슬 한 방울 새싹 한 포기라도 나눠 주기 위해 등껍질을 벗어던지고 어깻죽지가 빠지도록 헤엄을 쳤다. 나의 '섬'은 그렇게 수많은 피와 땀과 뼈를 녹여낸 생명수를 갈취해서 살아날 수 있었다.


'섬'을 탈출하고 싶었다. 탈출하고 싶은 나의 '섬'은 이제 괴물같은 나의 모습이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나의 '섬'은 부모도 가족도 아닌 나 스스로였던걸지도 모르겠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시커먼 남청색 빛의 '섬'을 탈출할 뗏목을 만들고 싶었다. 뗏목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이 괴로웠지만 죽을 것 같은 만큼 살아있었다. 진심으로 뗏목을 만드는 순간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행복했다.


그 때, 또 다시 '붉은거북'이 나타났다. 나는 '붉은거북'의 매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 '붉은거북'은 뗏목을 만드느라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런데 나의 '붉은거북'은 내 상처와 꼭 들어맞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붉은거북' 은 채 아물지 않은 나의 상처에 치명타를 입혔다. 나의 상처를 강제로 해부하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휘저었다. 탈출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붉은거북'의 얼굴을 한 채 나를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붉은거북'은 내가 짓고 있던 뗏목을 난파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작은 섬으로 오갈 수 있는 바닷길마저도 희미해져 버렸다. 나는 그가 너무나 미웠다. 나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그가 미웠다. 모래사장에서 '붉은거북'을 만났던 어느 날 그를 뒤집어 뙤약볕에 바싹 말라 죽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붉은거북'을 잔인하게 죽였다.


'붉은거북'이 나에게서 뗏목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뗏목 만드는 것에 집착을 했을까? 그렇게 해야만 '나'가 아닌 '너'에게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뗏목 그 자체보다 뗏목을 만들던 그 '순간'에 도취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순간 만큼은 '섬'을 발판 삼아 '나'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나의 '섬'은 나를 스쳐간 무수한 사람들이 쌓아 올린 것들이다. 그렇다면 뗏목을 만드는 일은 사실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 아니었을까?


'붉은거북'이 나에게서 작은 섬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 곳에서 작은 섬을 바라보고 깨달았다. 나는 정말 나의 '섬'을 벗어나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진심으로 바랐을까? 나는 그저 작은 섬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단순히 나의 '섬'이 싫으니 지상낙원 같아 보였던 작은 섬에 정착하여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기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런 마음으로 뗏목을 만들어 작은 섬에 도달했다면, 나는 그 작은 섬을 소모시키고 말았을 것이다.  

2024년 1월 주문진에서


나는 다시 나의 ’섬’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룻밤이 지나고 '붉은거북'이 등껍질을 벗고 사람이 되어 나에게 와 주었다. 우리는 앙상한 나와 너의 섬을 가꾸어 나갔다. 한때 어두운 남색이었던 나의 섬은 예쁜 푸른 빛이 되었다. 나와 그 사람은 행복했다. 종종, 꽤 자주, 아니 그와의 시간이 쌓이고 쌓일수록 시시때때로, 뗏목과 작은 섬 생각은 까맣게 잊을 정도로. 그는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자신을 지키던 등껍질마저 벗어버리고 자신을 말려 죽였던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붉은거북'이었던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갈수록 마음이 조여든다. 나는 그를 죽여서 내 곁에 둔 것이니까. 나는 과거에 그에게 상처 주었던 그 어떤 사람이니까. 그가 나의 피고름을 닦아내고 나를 안아줄 때 그의 고름도 함께 터져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그가 잠들었을 때 작은 섬에 대한 꿈을 꾸곤 하니까. 해일과 풍랑과 눈보라와 지진이 찾아오면 늘 상처를 주었던 나니까.


영화 속 남자는 뗏목을 바다로 흘려보내고 붉은거북이 있는 섬으로 돌아온다. 섬으로 돌아온 남자는 여자와 아이와 섬을 정성을 다해 아껴준다. 나는 너의 피고름을 닦아준 적이 있을까.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었던 적이 있을까. 네가 등껍질을 벗고 말라 죽었던 고통만큼 나는 너의 아픔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네가 있는 곳에 머무른 적이 있었을까.


나의 뗏목을 흘려보낸다.

이 섬에는 회색빛, 오렌지빛, 남청색빛, 붉은빛, 그리고 푸른빛들이 있다.

깊은 밤 꿈 속에,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웃음 소리에, 시리도록 아름다운 기억과 현재 속에 나는 산다.

그것들이 여기에 깃들어 있음을 안다.

나는 지금 이 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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