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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Apr 21. 2024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피해의식」 후기 02: '피해의식 (기억)'과 '피해자 의식 (사실)'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을 정의해보자. '피해자 의식'은 특정한 사건을 통해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 발생하는 마음 상태 (당황, 증오, 후회, 수치심, 복수심 등등)다. 반면 '피해의식'은 특정한 사건을 통해 피해받은 '기억'으로 인한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 상태다. 간단히 말하자면, '피해자 의식'은 '사실'의 문제이고, '피해의식'은 '기억'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피해의식」  76 p. 황진규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의 관계는 네 가지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피해자이기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피해의식'이 된 경우다. 둘째는 피해자이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피해의식'으로 옮겨가지 않은 경우다. 셋째는 피해자가 아니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 없이도 '피해의식'이 발생한 경우다. 넷째는 피해자가 아니기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없기에 '피해의식'도 발생하지 않은 경우다. - 「피해의식」  77 p. 황진규


나는 이십대 때 한창 젠더 이슈에 민감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피해를 받고 산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업계는 남자들이 우세한 구조이다보니 남자들이 여자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조금 더 도드라졌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들이 말하는 남성들의 우세한 점, 예를 들어 육체노동을 하거나,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처하거나,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것, 사소하게는 샤워를 빨리 하거나, 밥을 빨리 먹거나 등등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나의 여성성을 억제하고 남성성을 길러내는 삶을 살았던 셈이다. 그런데도 남자 동료들이나 선배 혹은 교수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억울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정하지 못하게 편의를 봐주면 기분이 나빴다.  


젠더 이슈로 인해 이십대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을 때였다. 당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인해 여성혐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었다. 뉴스 중에서도 유독 성범죄와 강간과 여성 살해에 관련된 기사들만 눈에 들어왔다. 포르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주제를 보거나 들으면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관심이 쏠리곤 했다. 부끄럽게도, 페미니즘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도 공부하지도 않았으면서 이십대의 나는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남성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적이 없었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이 사소한 피해는 있을 수 있을지라도, 내가 이상하게 감정이입을 했던 뉴스 속 피해자들처럼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서적 신체적 손상을 가져올 정도의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성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남성들과의 경쟁 구도에서 실제로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전형적으로 '피해자 의식' 없이도 '피해의식'이 발생한 경우였다.  



십대부터 이십대 내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소외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해의식 때문에 왕따를 당하지 않았는데도 상처받은 것 같은 마음이 늘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딜 가든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항상 나를 아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했던 나의 마음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를 아껴주려던 사람들이 주는 마음들을 마음에 쌓지 못해서 나는 늘 결핍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이 역시 전형적으로 '피해자 의식' 없이 '피해의식'이 발생한 경우였다.


스물 아홉살, 처음 철학흥신소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그 때 당시 나와 함께 수업을 듣던 분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고 삶의 경험도 많은 분들이셨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이미 철학 수업을 듣고 있어서 친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과 격의없이 지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당연한데도 나는 과도하게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서 수업을 들은지 몇 번 되지 않았을 때 스승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지금은 그 때의 내가 귀엽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이 장면은 나의 피해의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나를 좋아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독히도 유아적이었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그 사람을 좋아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해 준 것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는 그에 대한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나의 마음의 양상만 보면 스토커와 다름없었다. 음침하고 뒤틀어진 마음으로 스토킹을 하다가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을 해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제 3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스토커의 마음 상태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마치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듯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논리적인 비약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들과 다름 없었다. 머리로는 나의 마음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여백'과 '조정'에 따른 기억의 불투명성은 늘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언제나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여백'을 상상으로 메우고, '나'의 신체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기억'은 언제나 '사실'을 조작, 왜곡, 편집한 '기억'이다. 그래서 '사실'과 '기억'은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 의식 (사실)'과 피해의식 (기억)' 역시 이러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의식 (사실)'이 있으면 '피해의식 (기억)' 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의식 (사실)'이 있더라도 '피해의식 (기억)'은 없을 수 있고, 심지어 '피해자 의식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 (기억)'이 있을 수 있다.- 「피해의식」 81 p. 황진규
우리는 기억이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이해하게 된다. (중략) 그것은 인간의 신체의 외부에 있는 사물들의 본성을 포함하는 관념들의 어떤 연결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결은 인간 신체의 변용들의 질서 및 연결에 따라서 정신 안에 생긴다. (중략) 그것은 사실 인간 신체의 변용의 관념이며, 이 관념은 인간 신체의 본성과 외부 물체의 본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에티카」, 제 2부 정리 18, 주석. 스피노자


'피해자 의식 (사실)'과 '피해의식 (기억)' 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기억은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여백'을 상상으로 메우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신체와 대상 (사건)의 마주침에 따라 기억이 다르게 '조작' 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기억은 인간 신체의 변용의 관념이다. 즉, 동일한 피해 (사건) 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어린시절 연약한 신체와 마음으로 겪었을 때의 기억과 성인이 된 후 겪었을 때의 기억은 다르다. 


사춘기와 이십대 초반, 자연스럽게 생기는 성적 호기심과 이성에 대한 관심을 부모로부터 금지 당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중학생 때 처음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걸려 엄마에게 머리를 맞았던 기억, 남자 아이들과 문자를 할까봐 핸드폰 검사를 당했던 기억, 자위행위를 하다가 엄마에게 걸려서 혼났던 기억, 엉덩이가 크다고 아빠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 달라붙는 옷이나 짧은 옷을 입지 못하게 했던 기억, 여자아이가 얌전하지 못하다고 타박 들었던 기억, 이십대 때의 과도한 통금과 외박 금지 그리고 핸드폰 검사에 대한 기억 등.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 가부장적인 통제와 억압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을 겪었다. 지금도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느끼지만, 축산업은 남성들이 우위를 점하는 업계라 어디를 가든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연구실의 분위기는 그 중에서도 다분히 가부장적이었다. 지도교수는 자신의 제자로 여학생을 받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유는 여학생들은 육체 노동이나 더럽고 힘든 일을 꺼리고 대체로 개인주의적인 편이라 단체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실험실을 다니는 3년동안 여자 학생이라고는 초반 몇개월을 제외하고는 나뿐이었다. 


기억, 즉 피해의식이 나의 신체 상태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는 말은 나의 신체가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서도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나의 신체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나의 신체는 어린시절만큼 상처에 취약하지는 않았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심각한 성적인 폭력이나 차별을 당한 적도 없었기에 심각한 피해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탕화면처럼 은은히 깔려 있는 억압과 통제의 분위기는 어린시절의 기억, 즉 나의 증폭된 피해의식을 부풀리는데에 일조했다.


소외에 대한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더 이상 친구들의 무리를 겉돌며 눈치를 보는 주눅든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철학흥신소에 갔을 때 왜 소외감을 더 크게 느꼈던 것일까? 그 당시 나는 과거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되짚어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마치 내가 따돌림을 당하던 무기력하고 우울하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이십대 때의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어린시절 나의 피해의식이 내 삶 전반을 묶어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스러웠다. 즉, 나의 신체 상태 자체가 피해의식이 증폭될 수밖에 없던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의 피해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피해의식은 있음과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그렇다면 피해의식을 균형 있게 다룬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피해의식을 과잉해석하지도, 과소해석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이 두 가지 불균형 상태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부터 밝혀두자. 그 뿌리는 '피해자-피해의식'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인식하는 오해다. - 「피해의식」  82 p. 황진규
피해의식의 과잉해석이 무엇인가?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전히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중략) 그렇다면 피해의식의 과소해석은 무엇인가? '피해자가 아니면 피해의식은 없다'고 단정하는 마음이거나 혹은 '피해자가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 「피해의식」 83 p. 황진규 
피해의식은 '기쁜 슬픔', 피해자 의식은 '슬픈 기쁨'이다 - 「피해의식」85 p. 황진규


피해의식은 환경과 나의 신체조건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있음' 과 '없음'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즉, 지금은 피해의식이 적어졌더라도 상황과 내 신체에 따라 커질수도 있고, 지금 피해의식이 크더라도 상황과 내 신체에 따라 작아질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변 환경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으니 내 마음과 신체가 성숙하고 씩씩해진다면 피해의식을 최대한 적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피해의식들을 한 번 꺼내어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 싫은 나의 어둠을 우선 덮어놓고 돌아보지 않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시선을 돌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운동을 하고, 연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젠더에 대한 피해의식이 옅어졌다. 나보다 더 여성으로서 피해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외모를 가꾸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면서 소외에 대한 피해의식이 옅어졌다. 나보다 더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었다. 


어떤 것이 피해받은 '사실'인지 '기억'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을 돌아볼 때에는 슬펐지만 그 슬픔을 견딘 후에는 기쁨이 찾아왔다. '기억'을 돌아볼 때에는 두 가지 마음이 부딪혔다. '기억'에 함입되어서 그 안에서 머무르고 싶은 마음 (나를 속이고 싶은 마음)과 '기억'에서 빠져나와 바깥에서 조망해야 한다는 마음 (정직하고 싶은 마음). 전자에서는 마치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실 때처럼 1차적인 쾌락이 있었지만 이내 공허하고 허무한 슬픔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후자에서는 수치스럽고 아팠지만 그 슬픔을 견딘 후에는 기쁨이 찾아왔다.  


술, 담배, 게임, 도박 등과 피해의식은 같다. 둘 다 기쁜슬픔이기에 즉각적인 쾌락과 이완을 주지만 그 이후에 더 큰 슬픔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강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분노, 열등감, 무기력, 억울함, 우울함에 휩싸여서 살아갈까? 즉, 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으로 살아갈까? 약자로 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약자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당위성을 스스로 마음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굉장히 폭력적이고 무례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 지독히 나약하고 비겁했기 때문에 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약하고 비겁한 사람은 반드시 타자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있다. 약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가 있다. 본인은 약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상처라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아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인에게 마음이 식었는데도 자신이 나약해서 헤어지지 못해서 만나는 것이면서 상대편을 위해 만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에는 내가 약해서 혼자 있지 못해서 그를 만나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내가 나의 나약함 때문에 연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가해자의 상처는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것 아닐까? 나약했던 사람이 연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다면 적절한 시기에 헤어지자고 말할 것이다. 헤어짐 자체도 상처이겠지만 좋아하지 않는데 만나는 것이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헤어짐을 고하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남는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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