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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Jul 15. 2024

수행 vs. 자기처벌

체육관에 매일 나와서 같은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혼자 샌드백을 치고, 링에서 쉐도우 연습을 하고, 상대와 매서운 주먹을 주고 받으며 스파링을 하는 관원들이 있다. 운동이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부상을 당하거나 자신이 다른 관원을 다치게 하든, 체육관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든, 함께 연습할 파트너가 있든 없든,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서 묵묵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운동에 임하는 관원들이 있다.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매일 주어진 분량의 운동을 소화해 나가야 할 테지만 이들은 운동선수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합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단한 하루하루의 직장생활을 버텨내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도를 닦으며 수행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철학을 배우고 있다. 흔히들 철학은 머리로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철학은 머리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온 몸으로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다. 즉, 배운 철학을 내 삶으로 살아내야만 제대로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앎과 삶의 일치. 그것이 내가 배운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철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수행이다. 예를 들어서, '진정한 사랑은 내 것을 아끼지 말고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라는 앎을 배웠다고 해보자. 철학을 제대로 배우고 공부했다면, 거짓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이렇게 행해야만 한다. 내가 더 고되게 일을 하고 배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내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사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대목을 단순히 은유로 받아들이거나, 대번에 코웃음을 치거나, 손쉽게 관념으로만 그리할 수 있을거라고 단정지어 버릴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철학적인 삶은 그런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 내가 가장 약해지는 순간에, 가르침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을 제대로 배우면 늘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을 배우는 것은 수행이다. 그 수행을 견뎌낼 때 더 기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갖가지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운동을 나와 하루치의 운동을 나름의 최선을 다해 해내는 일상을 반복하는 관원들의 모습을 보면 때로는 경건한 마음이 든다. 그들만의 작은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싸움이 스스로를 위한 싸움인지, 너를 위한 싸움인지, 우리를 위한 싸움인지, 그 고귀함의 정도를 떠나서, 정직하게 싸움에 임하고 맞서기 위해 매일의 수행을 묵묵히 해 내는 모습이 참 멋있다. 머리로 움직임을 학습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해 몸에 익히는 것. 선수들이나 진지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운동을 꽤 꾸준히 해 왔던지라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은 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수행을 견뎌낼 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살 힘이 생긴다는 것도 안다. 철학과 운동은 둘 다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참 많이 닮아있다.


우울과 위축감과 불안이 찾아올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대개 우리가 우울에 잠식되는 이유는 과도한 관념의 작용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운동을 '수행'으로써 하게 된다면, 운동을 통해 위축감과 불안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고, 그렇게 철학에서 배운 앎을 삶으로 살아내는 수행도 동시에 행하게 될 것이다.




철학자들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철학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삶의 핵심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그 자체로 수행하는 삶이다. 좋아하는 운동을 매일 함으로써 수행하는 삶을 산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내 삶은 기쁘고 지혜로운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느 순간부터 운동은 나에게 '수행'의 도구가 아닌 '자기처벌'의 도구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소중히 하지 못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사실, 게걸스러움도 집착도 아닌 '자기처벌' 이었다.


한때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과 명절도 갈아넣어야 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잘하고 싶었다. 수행하듯이 공부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더더욱 나를 몰아부쳤다. 시간을 쪼개서 일하고 공부하고 논문을 썼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기쁘지 않았다. 그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샌가 잊혀졌고 자책하고 회개하고 스스로를 벌주는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목적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을 견뎌내는 것이 되었다. '자기처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 것이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변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처벌의 수단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자해를 한 적이 있다. 고통은 나에게 쾌감이었다. 언제나 그런 고통은 나에게, 검은 하늘을 두동강 내는 선명한 벼락의 이미지로 온다. 매운 음식을 먹는 것. 과식. 음주와 담배. 스스로를 슬픔으로 몰아넣는 그 모든 것이 자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른 채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어한다. 나를 파괴한 뒤에 다시 파괴할 수 있도록 복구하는 것이 내가 삶을 살아나가는 방식이었다.  


좋아하던 복싱을 고행처럼 하게 되었던 것도 나의 그런 삶의 관성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복싱을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느냐가 중점이 되었다. 자기처벌의 수단으로 복싱을 이용한 것이다.


모든 '수행'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고통' 자체가 '수행'은 아니다. 이 둘은 충분조건의 관계에 있다.

반면, '자기처벌'에는 '고통'이 따르고 '고통'은 '자기처벌'일 수 있다. 이 둘은 필요충분조건의 관계에 있다.

나는 비겁하게 '자기처벌'을 '수행'으로 둔갑시키려 했다.


자기처벌은 비겁하다. 그것은 타인이 나를 비난하기 전에 나를 처벌하고 비난함으로써 회피하려는 수단이다. 나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나를 가엾게 여기는 사람에게도, 나의 아픔을 아파해주는 사람에게도 자기처벌은 그 자체로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인 양 행세했기 때문에 내 주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걱정하는 마음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비겁함을 그들은 가엾고 마음 아프게 바라봤기 때문에.




복싱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복서를 분류하자면 '인파이터'와 '아웃복서'로 나눌 수 있다. '인파이터'는 공격적으로 상대방을 파고들며 접근전을 치르며 주먹을 많이 내는 스타일의 복서를 칭하고, '아웃복서'는 반대로 상대방과 거리를 유지하며 풋워크를 통해 원거리에서 치고 빠지며 전략적으로 주먹을 내는 스타일의 복서를 칭한다. 시합 경력이 없기에 나의 플레이 스타일을 분류하기에 민망하긴 하지만,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인파이터'라고 할 수 있다. 신장이 작고 리치가 짧으며 스텝을 잘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 전략적인 플레이를 못하는 편이다. 반대로 무지성으로 주먹을 무조건 많이 내거나 상대방 주먹을 맞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두려워하는 편이다.


작년 말쯤, 고등학교 1학년 국가대표 선수랑 스파링을 한 적이 있다. 그 선수는 나보다 신장이 길고 스텝을 잘 살리는 아마추어 복싱 스타일의 플레이를 구사하는 아웃복서였다. 간만의 스파링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여자 복서가 잘 없기 때문에 스파링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나로서는 생활체육 수준보다 더 높은 실력을 갖춘 복서와 겨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링에 올랐다.


내가 실전 경험이 없기도 했고 연습량과 준비도 많이 부족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고 기량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당연히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나는 제대로 때려보지도 못하고 상대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았다. 물론 상대방이 애초에 주먹을 많이 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맞은 볼륨 자체가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드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채로 다짜고짜 들어가서 상당히 센 펀치를 여러번 맞았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지만 주먹은 내가 맞아본 주먹 중에 가장 매서웠다. 레프트 라이트 훅을 여러번 맞고 고개가 돌아가고 머리에 쾅 펀치가 꽂힐 때마다 새하얀 빛이 번쩍하고 정신이 어질어질 해지곤 했다.


나중에 코치가 말하기를, 가드를 올리라고 계속 말했는데도 내가 앞손 가드를 올리지 않고 무지성으로 돌격하는 바람에 막을 수 있거나 피할 수 있는 펀치도 다 맞았다고, 거의 내가 때리라고 대준거나 다름 없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위험하게 인파이팅을 하는 것은 좋은 플레이 방식이 아니라고 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늘 듣는다. 가벼운 펀치 몇개 정도 맞으며 들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위험한 거리가 어디인지,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러나 막상 링에 올라가면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어쩌면 나는 안전하게 싸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마음은 철학에서 지혜로움의 한 조각으로써의 '나를 지키지 않는 마음' 과는 다르다. 철학에서 '나를 지키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나를 버림으로써 너를 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위험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에서 말하는 '위험'은 '수행'이다.


그러나, 내가 위험하게 인파이팅을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나를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지 않아서 너를 더 사랑하기는커녕, 나를 지키지 않고 파괴되어 무책임하게 삶을 끝내버리고 싶은 욕망의 발로인 것이다. 그리하여 너마저 파괴될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아니, 사실 나는 불행에 빠진 물귀신처럼 너마저도 불행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고 싶은 것이었다. 나에게 '위험'은 '수행'이 아니라 '자기처벌' 이었다.




'김득구' 라는 복싱 선수가 있다. 1956년에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홀로 서울로 상경해 무작정 당시 가장 유명한 복싱 체육관인 동아체육관을 찾아가 아마추어 선수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사우스포에 인파이터 스타일의 플레이를 구사했던 그는 남다른 투지와 성실성과 근성으로 체육관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고, 프로 데뷔 후 20전 중 무려 17승을 이루며 복싱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그 기세를 몰아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과 동양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WBA 라이트급 챔피언인 '레이 맨시니' 선수와 타이틀전을 가질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번도 세계 무대에서 활동해 본 적이 없었기에, 김득구 선수는 그 도전장을 단번에 받아든다.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모두가 어려웠을 시기였지만, 그의 집안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하다고 불리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복싱은, 제대로 된 꿈조차 가질 수 없었던 한 맺힌 심정,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는 부모를 향한 애절한 마음, 중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서울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설움, 그 모든 것들이 꽁꽁 뭉쳐진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그의 가슴을 너무나 뜨겁게 달궈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을 그의 포효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훈련시간에 늦은 그를 관장님이 체육관에서 쫒아내자 자살 시도를 했을 정도로 복싱은 그에게 전부였다. 매일 훈련을 하며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은, 링 위의 피 한 방울과 맞바뀐다' 라고.


故 김득구 선수


그리하여 1982년 11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도전자 김득구 선수와 챔피언 레이 맨시니 선수의 WBA 라이트급 챔피언 전이 열린다. 김득구 선수는 이 시합에 사활을 걸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맹훈련을 했다. 그는 시합에 나서기 전, 정말로 출국 며칠 전 관을 짜서 체육관에 들고 와서는 "관을 준비해놓고 간다. 패한다면 절대 걸어서 링을 내려오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고 한다. '사생결단' 글자를 하얀 천에 써서 머리띠로 두르고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맨시니 선수와 김득구 선수의 기량 차이가 상당했다.  맨시니 선수의 타이틀 방어전 희생양으로 동양 변방 국가의 이름없는 선수를 데리고 왔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루어져서는 안됐을 매치로 보는 시각도 많다. 김득구 선수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만큼 비장한 각오로 시합에 임했던 것이다.


당시 복싱 시합은 3분 15라운드로 진행이 되었다. 9회까지는 김득구는 상당히 우세를 점했고 심사위원들과 관중들까지 김득구의 기세를 인정했지만 10회 때부터 반칙과 체력고갈로 인해 난타를 허용하게 되었다. 11라운드부터 13 라운드에 걸쳐서 김득구가 일방적으로 맞는 형국이 이어졌지만 그는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듯 보였다. 14라운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맨시니의 레프트 라이트 훅이 적중하고 연이어 왼쪽 펀치가 턱을 가격하자 김득구가 다운이 되고 만다. 다운 후 그는 휘청이며 로프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다시 일어나지만 주심의 KO 선언으로 맨시니 선수의 승리가 선언되고 경기가 종료된다.


맨시니가 환호하는 관중과 코치에게 둘러싸여 승리를 축하하는 도중 김득구는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결국 그는 5일만에 뇌졸중으로 인한 뇌사 판정을 받고 향년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경기를 계기로 WBC에서는 복싱 경기 라운드 수를 15 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이고 라운드 사이의 휴식 시간을 60초에서 90초로 늘렸으며 스탠딩 다운제를 도입하였다.


김득구 선수의 일대기를 영웅의 일대기처럼 묘사한 영화를 보았다. 마음이 안 좋았다. 누군가는 사생결단의 투지를 가슴에 새기고 관까지 미리 짜 놓을 정도로 비장하게 시합에 임했던 김득구 선수를 진정한 영웅이자 파이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의 투지와 정신력은 감히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진정한 파이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김득구 선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일대기를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던 영화감독에게 분노한다. 그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의 죽음을 감동을 자아내는 일대기로 미화시켜서는 안됐다.


얼마나 서럽고 한스럽고 힘겨웠으면 그렇게까지 복싱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을까? 안타깝고 슬퍼서 화가 났다. 나는 김득구 선수의 삶이 어땠는지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감정들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껏해야 말 한마디 글 한편 쓰는 것이 그들이 짊어져야 했을 아픔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만약 그가 진정한 파이터였다면 죽을 각오로 정말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세가 기울어졌을 때 다음 시합을 위해 포기할 줄도 알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조심스럽다. 우선 나는 김득구 선수만큼 복싱을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한평생 그렇게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 것이 있었던 적도 없다. 그리고 그만큼 한 많고 서러운 삶을 살아오지도 않았기에 복싱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의 마음에게 다가왔을지 평생가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실례임에도 무릅쓰고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가 본다.


나는 가끔씩 스파링을 할 때 김득구 선수가 느꼈을 마음과 비슷하게 임할 때가 있다. 그만큼 비장하지는 않더라도 아무리 맞더라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마음이다. 국가대표 선수와 스파링을 했을 때가 그랬다. 엄청난 기량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상태나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사실 그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사실은 맞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머리에 쾅 충격이 가해지고 어질어질한 그 순간이 아프지만 편했다. 김득구 선수도 혹시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의 삶이었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활활 태워버리듯이 그의 고통도 삶도 끝내 버리고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에, 그의 어머니는 가난이 득구를 죽였다며 농약을 마시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경기의 심판을 봤던 주심도 죄책감과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한다. 레이 맨시니 선수도 자신이 김득구 선수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리게 되고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김득구 선수에게는 당시에 임신한 약혼녀가 있었는데 그의 사망 이후에 태어난 아이를 약혼녀 홀로 키우게 된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자기처벌' 의 수단으로 복싱을 대할 때 힘든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걸까. 나는 얼마나 비겁했던걸까. 묵묵히 수행을 견디는 척, 잘 살아내고 견디는 척, 철학을 삶으로 살아내려는 척, 책임지고 감당해내는 척. 그래서 결국 주려 하지 않고 받기만 하려고 했구나. 희망없이 사랑하지 못해 공포와 불안이 가득한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구나. 또다시 다른 불행을 만들어내서 나뿐만 아니라 너까지 불행해지는 삶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구나.


나는 도대체 무엇을 견디고 무슨 고통을 감내해 냈던 걸까. 아무것도 해결해내지 못하는, 아무런 사랑도 치유도 생성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고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뭐라도 견뎠다고 자위하는 삶을 살아왔다. 서운하고 서럽고 억울한 마음도 결국은 아무것도 진짜로 해내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내 스스로가 지어낸 환영이었던 것이다. 나는 자기처벌의 미궁에 또다시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진정한 파이터 어떤 파이터일까? 진정으로 지혜롭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늘 비장하게 각오만 해 왔던 나였다. 비장함은 필연적으로 삶을 무겁게 만든다. 무거운 것과 진지한 것은 다르다. 무겁지 않고 진지한 삶은 어떤 삶일까. 세상에 아무리 애를 써도 인연이 맺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간과 장소 온도 습도 날씨 그날의 옷차림과 기분 등등 모든 변수가 우연치않게 맞아 들어가야 인연이 성사되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수행에 대해 생각한다. 그 수많은 변수들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잊고 온 마음을 다해 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겸허히 인정하고 순응할 수 있는지. 그 인연과 운명을 텅 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곱고 투명하고 잔잔한 호수같은 마음. 진정한 수행이란 그런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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