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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26. 2023

70년이 훌쩍 넘어도 변하지 않는 [세일즈맨의 죽음 ]

무엇이 중한지?


1949년 미국에서 나온 희곡 작품이지만 21세기 어느 곳에 대입해 봐도 충분히 있음 직한 이야기.  (여담이지만 1950년에 한국은 나라가 거의 없어질 뻔했는데 미국에서는 이미 현대사회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던 걸 보면 정말 같은 시간을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듯하다.)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다가 은퇴할 때가 다 되어가는 아버지 윌리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는 전형적인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두 아들과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들의 행복을 보며 함께 행복을 느끼는 그런 가장.


하지만 서른이 넘은 두 아들은 변변한 직업 없이 그저 이 일 저 일을 전전하고 있다. 윌리는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부에서 촉망받던 인재였던 큰아들의 모습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는 한 회사를 3개월 이상 다니지 못하는 큰아들에게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그래 너 같은 인재는 누구 밑에서 일하기엔 아깝지. 사업을 시작해 보자!”


아버지는 치매가 시작된 듯 자꾸 깜빡깜빡하는 모습을 보이며 영광의 라떼 시절 환상을 자주 본다. 그리고  날밤,  아버지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마찰을 빚은 그 날밤,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절규한다.

 “I am nothing! I am not special. Don’t you understand?”


이제 더 이상은 이 늙은 세일즈맨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  - 36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한순간 해고당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최전성기만 떠올리며 자신과 자식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아들이 원하는 직업이 달라 생기는 갈등 - 내꿈을 니가 대신 이뤄다오.

아버지에 대한 실망으로 자신의 인생까지 의미를 잃어버린 아들 - 아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한 데에는 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고 아버지는 이에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남편을 존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모르는 고지식한 어머니

가까운 것 같지만 정작 제대로 된 소통은 하지 못하는 가족들 - 대화는 대부분 겉돈다.

죽는 날까지 갚아야만 하는 모기지와 할부 (윌리의 장례식장에서 아내 왈, “여보, 오늘 드디어 모든 할부를 갚았어요. 모든 게 우리 것이 되었는데 당신은 없네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물질만능주의까지. (“아빠, 우리가 이 차를 드디어 사다니... 성공했네요!” 가족의 행복한 날을 회상할 때는 항상 어떤 물건이 나온다. 그렇게 할부인생의 시작.)


  "그래도 내가 죽으면 보험금은 나오겠지."

(진짜 아부지 이 대사에서 울었다ㅠ)

제3자입장에서 이들의 문제는  명확히 보이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가족 모두가 안타깝다. 아버지는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의 가치는 보험금으로 환산될 뿐이었다.


 "그렇게나 많던 너의 아버지의 동료들과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 거니?

그렇게 인맥이 많았다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가족과 이웃 몇몇만 왔을 뿐이었다.

광기에 찬 아버지의 마지막 운전이 섬뜩하다,

작품 자체가 너무나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보는 내내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자식들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마찰을 빚고 있을 그 누군가들이.


아직 일하고 싶은데 더 이상 나를 받아주지 않는 사회는 이미 왔고,

특히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그 누구보다 빨리 남다르게 질주하고,

자식에 대한 기대로 혹은 자식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며 자식의 인생을 갉아먹는 부모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자신의 미래를 어찌할지 몰라 방황하며 시간만 보내는 사람들이 있고,

물질로만 가치를 판단하는 세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한국전쟁 때 나온 작품은 2023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해서 너무 씁쓸하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도 결국 내가,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그러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가족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할지

삶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할지를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이 영화는 모든 사람에게 그 지점을 질문하고 있다


P.S. 영화를 보며 이런 분석을 하고 싶진 않지만 좀 더 덧붙여 보자면


1.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아버지는 자식이 용납하기 힘든 일을 저지르고 그걸 큰아들에게 들킨다. 본인의 정당한 실력이 아닌 편법을 써서 일을 계속하며 억지로 현재 삶의 수준을 영위하려 애쓰는 자체로 이미 그의 실력이나 수준이 드러나는 게 아닐지.


2.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건 받은 거고 그걸 핑계로 10년이나 되는 시간을 낭비한 건 철저히 자식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3. 연극은 물론 영화로도 두번이나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으로 상영된적있는 인기 있는 작품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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