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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열 Sep 25. 2020

우유니를 그리며 오래도록 상상했던 이야기

Sala de Uyuni, Bolivia

우유니.


흰 사막 혹은 새하얀 바다.

아주 오래전 깊은 바다였던 이곳은 서서히 위로 솟아 소금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 중 오로지 몇 달 동안만 빗물을 머금고 하늘을 반사시키며 형용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많은 이들은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곳에 오기를 꿈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의 이름도 모르던 때, 한 친구 때문에 무작정 우유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 첫사랑이라거나 첫 연애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미숙한 사이였던 그 친구 때문에.

대강 어림잡아 세보면 이삼십 대 열에 아홉 정도는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물론 지금은 그 대신 다른 SNS를 하지만) 그 아홉 중 여덟은 가슴 아프거나 그저 그런 이별을 적어도 한 번쯤은 해봤겠지. 게다가 헤어진 상대의 미니홈피에도 몰래 들어 가보고.

사실 나도 케케묵은 방명록을 뒤져 그 친구의 미니홈피에 가봤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남미, 소금사막."


이라고 마치 인생의 최종 목표 마냥 장엄하게 써놓았다. 아니 장엄하게 내가 읽었다. 그렇게 그녀 덕분에 우유니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립다거나 아련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녀를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나게 되면, 아마도 난 고개를 조금 내밀고 살짝 눈을 찡그려 빤히 바라보다가 한 2초 정도 잠시 침을 꼴깍 삼킨 다던지,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는 아무렇지 않게

"안녕? 오랜만이야."

라고 이야기할 거라 생각했다.





볼리비아에 도착하자마자 우유니에 큰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엔 조금 천천히 가고 싶었지만 하늘이 비치는 우유니를 꼭 보고 싶었기에 그리고 지금은 건기가 시작될 무렵이라 다시 비를 기다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무작정 16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우유니로 달려갔다.


다행히 그 소식은 사실이었고 하늘을 머금은 우유니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풍경 그리고 그 사이를 거닐 수 있는 황홀함.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카메라로 도무지 담을 수 없는 꿈같은 풍경 속에서 3일간의 시간을 일행들과 아름답게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우유니 여행의 끝으로 칠레 국경에 도착했다.


이제 칠레로 넘어갈 시간.

그러나 일행들에겐

"미안하지만 난 우유니 마을로 돌아갈 거예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약속 있었어요? 말 안 했잖아요.”


"아니, 약속은 아닌데 그냥 하루만 더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하루만 더 기다리고 싶어요."

겨울철 내 손등만큼이나 건조하게 다시 거짓말을 했다.


8시간 정도나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 우유니 마을로 돌아왔다. 3일 동안 함께 여행했던 일행도, 오랫동안 함께 여행했던 동행도 없이 혼자 원래 묵었던 호스텔로 돌아왔다. 한 달여 만에 혼자 밥을 먹고, 방문을 열고, 창문 밖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이런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 괜히 읽히지 않는 책을 펼쳤다 카메라 속 사진을 넘겨보다 외롭게 잠이 들었다.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는데도 다음날 해가 다 떠서야 느지막하게 일어나 대강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물고 잠시 바람 쐬러 문밖으로 나섰다. 

햇빛은 따가웠고 바람은 차가웠다. 

어차피 날씨에 대해서 말할 사람도 없으니 

아무 말 없이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열한 번 반 정도 담배를 들이켰다 내뱉고, 재를 털고 다시 숨을 삼켰다. 

텅 빈 담배꽁초를 한 손에 들고 새파랗게 마른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슬조차 말라버린 듯한 풍경을.






그렇게 홀로 한참 서 있다 약간의 인기척에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살짝 눈을 찡그리고 고개를 조금 내밀고 2초 정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 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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