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최대 화두라면 단연 비대면, 비접촉을 꼽을 수 있다. 감염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사람들의 궁극적인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결과다. 이동에 있어서도 비대면, 비접촉 트렌드는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의 선호와 행동이 비대면, 비접촉 트렌드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물리적 이동에 머물러 있던 우리의 인식은 ‘사람이 아닌 이동’까지 확장되고 있다.
왜 이동해야 하는가? 불필요한 이동은 다른 방법이 대신해 줄 수는 없는가? 이동에 대한 새로운 물음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프라인 사재기와 온라인 사재기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대응을 잘한 나라와 못한 나라를 뚜렷하게 드러내 주었다. 특히, 사재기의 유무는 코로나19에 대한 각국의 대응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비교 항목이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 화장실 휴지를 비롯하여 생필품 사재기가 기승을 부릴 때 우리나라의 평온한 마트의 모습은 외신과 유튜브 등을 통해서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재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급격히 증가한 생필품 수요를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물류시스템이 흡수할 수 있었기에 ‘온라인 사재기’가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패닉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았다. 국내 택배시장의 주요 업체인 CJ대한통운의 택배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해당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31번 확진자 발생 이후 국내에도 불안감이 급격히 확대되던 시기인 2월 4주에 생수, 라면, 통조림 등 비상물품 주문량은 전주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해당 물품의 안정적 배송이 지속되면서 ‘온라인 사재기' 현상은 곧바로 사그라들고 평시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온라인 사재기 현상은 이동에 어떤 의미를 줄까? 먼저, 우리나라가 생필품 사재기 무풍지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굳이 생필품을 사러 매장에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쿠팡, 마켓컬리 등 신생 유통기업들이 등장하며 전국 곳곳에 물류망을 촘촘히 설치하는 경쟁이 펼쳐진 결과, 오프라인 매장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신선식품마저 반나절만에 배송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물류시스템이 구축된 덕이 컸다.
더불어 그동안 빠르게 성장해 왔던 음식배달 서비스, 주택가 곳곳에 위치한 편의점도 코로나19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영업하면서 사람들의 심리적 안전판이 되어 주었다. 언제든지 생필품, 식료품, 음식을 살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면서 집안에 굳이 쟁여둘 필요가 사라졌다. 사물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 준 물류 혁신이 비상물품을 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을 사람들의 이동 수요를 크게 상쇄시켰다. 나아가 유통과 물류를 통합하며 혁신을 주도한 기업들이 비대면 서비스도 오프라인처럼 생생하고 직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모바일앱을 제공해 왔던 것도 주효했다.
결국은 신뢰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이 필요한 순간에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나라에는 무너지지 않았다. 편의점, 신생 유통기업들이 2중 3중으로 물류망을 구축한 덕이 컸다.
나아가 정보의 이동을 통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이 제공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구분이 무색해졌고, 코로나19 속에서도 비교적 평온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현상이 코로나19라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발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검색하고 구매하며, 오프라인으로 배달받는 경험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틈새시장에 머물러 있던 퀵커머스 시장도 단번에 빠르게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하게 되었다. 교통과 물류 사이에 놓여있던 장벽은 동시에 빠르게 희석되는 시장환경의 변화가 본격화되었고, 음식배달, 모빌리티, 편의점 등등 다른 세계에서 경쟁하던 기업들이 새로운 전장에서 마주치면서 치열한 수싸움도 막이 올랐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벌어질 일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소비자의 경험이 바뀌고, 공급자의 경쟁우위도 빠르게 흔들리는 상황이 왔다. 누가 승자가 될지, 누가 패자로 전락할지 모르는 상황.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