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cyborg)= [cyb]ernetic+[org]anism
어떻게 보면, 운동선수는 이미 '사이보그(Cyborg)'다.
아래 기사를 보자.
"테니스에서 30대 전성시대가 온 이유는 뭘까.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 근거 중 하나로 라켓의 진보를 꼽는다. 국제테니스연맹에 따르면 라켓 무게는 30년 전과 비교해 25~40%나 가벼워졌다. 테니스 라켓이 나무→강철→카본, 그라파이트 등 첨단 소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벼우면서도 강한 샷을 할 수 있는 라켓이 해마다 새롭게 개발되면서 파워는 떨어져도 경기 운영 능력과 기술이 좋은 베테랑 선수들의 활로도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테니스 엘보(elbow)'로 불릴 만큼 선수들에게 치명적이었던 팔꿈치 부상을 방지하는 진동 흡수 기능도 향상되면서 프로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있다. (...) 과학적 훈련과 재활법도 빼놓을 수 없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00023.html
라켓이 없는 코트 위의 선수가 목욕탕 안에서 옷 입고 있는 사람처럼 어색한 것처럼 라켓은 '논리적'(logically)으로 테니스 선수에게 '이식'되어 있다. 단지, 물리적으로(physically) 매우 느슨하게 '이식'되어 있을 뿐이다. 경기가 끝나면 라켓은 놓으면 그만이다. 이식의 물리적 실행과 종료가 매우 쉽다고 볼 수 있다.
테니스 라켓의 진보로 인해서 프로 선수들의 수명이 늘고 있다는 것은 '좋은' 테니스 라켓이 운동선수(사람)에게 "장착"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첨단소재가 느슨하게 이식되어 운동선수의 물리적 능력을 '개조'해준 것이다. 과학적 훈련, 재활법, 영양관리 등도 어떻게 보면 경기 무대 밖에서 비실시간(시간차)으로 무엇인가가 선수를 '개조'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미 여러 영역에서 인간은 'hybrid'가 되어왔고, 이를 통한 인간의 '개조'라는 것을 느슨한 인간의 연결인 사회의 차원에서 본다면 '문명'의 발전과 또한 인간의 진화를 떼놓고 보기도 힘들다. '장착' 혹은 '이식'과 같은 가시적인 접속보다 더 넓은 범위의 'hybrid'가 우리 인간의 본질일 수도 있다.
마셜 맥루한이 그의 걸작 <미디어의 이해>의 제목에 <인간의 확장(the extention of man)>이라고 붙인 것에서 같은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도구의 결합을 통한 인간의 확장이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는 통찰의 결과다.
우리의 통념상 사람인 것과 사람이 아닌 것의 'hybrid'가 본래 사람의 본질이라면, 사람의 탈을 쓴 인공지능, (외골격) 로봇의 탈을 쓴 사람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혹은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런 물음은 사람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이냐로 확대될 수 있다.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not 사람이냐?
무엇이 살아 있는 것이고, 무엇이 not 살아 있는 것이냐?
사람과 비사람(ex. 기계, 인공지능, 로봇), 삶과 죽음, 정상인과 비정상인, 백인과 유색인, 남과 여 등등...
흑백(人)의 구분처럼 과거에 어떤 것은 매우 상식이었지만, 지금은 완전 비상식이다. 매우 뚜렷하게 새로운 선이 그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거-현재-미래가 오버랩되면서 모호해진 구분의 경계선이 점점 더 옅어지고, 완전 새로운 선이 그어지는 것에 대해서 익숙해지는 시대가 분명 오고 있다.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 메타버스의 확장과도 맞물려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이 원래 '사이보그(Cyborg)'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