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과 화물의 경계가 옅어지는 생생한 사례
앞의 글 https://brunch.co.kr/@technomics/67에 이어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봤다. 당근마켓 중고거래를 카카오 T 택시를 불러서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 하나의 신드롬이라 부를만한 '당근마켓'을 국내에서는 불법인 택시 배송을 이용해서 거래하는 실험을 기자가 직접 영상을 찍고, 자막을 달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캡처해서 기사화하다니. 콘텐츠도 신박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컨테이너도 참 신박하다.
사실 몇 년 전에도 바이라인 네트워크의 다른 기사에서 택시를 이용한 배송 실험을 실제로 해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그때는 없던 당근마켓과 카카오 T 택시의 출발지, 목적지 지정과 자동결제를 묶어서 거의 Lean Start-up과 같이 가설 검증을 했다.
최근 계속 생각하는 화두와 맞물려 있어서 몇 가지 포인트로 정리해 보았다.
당근마켓을 이용한 중고거래는 '당신의 근처'에서 거래를 하는 거라 주로 직거래가 이루어지지만, 집-회사 등 장소가 안 맞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직거래 장소에 주차가 힘들거나 등의 이유로 택배거래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택배라는 것은 주로 쇼핑몰에서 구매한 물건을 받는데 특화되어 있다 보니 물건을 보내는 것에는 조금 약하다. 편의점 택배가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역시나 물건을 가지고 편의점에 가서 주소를 받아 적고 하는 일련의 귀찮은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택배는 빨라야 익일 배송이라 직거래의 대용으로 쓰기에도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중고나라의 벽돌 거래처럼 돈만 받고 먹튀 하는 사기꾼의 위험도 입금과 배송의 시차가 클수록 높아진다.
택시 배송은 그런 점에서 개인 간 물품 배송 수요, 특히, 도시내 물품 배송에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무임승차를 이용한 노인들의 지하철 배송이 나름대로의 활용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택시의 가동률이 떨어지는 시간대에는 택시 배송이 기사에게는 추가적인 수입의 기회, 배송 이용자에게는 비교적 저렴하고 빠른 배송 수단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이동이 줄어들자 택시 기사들의 수입도 타격을 받았다. 비교적 관리가 잘된 우리나라도 작년에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도시가 락 다운되기도 했던 해외의 경우에는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우리와 유사한 택시 제도를 가진 일본의 경우에는 팬데믹으로 택시 업계가 받은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작년 4월 도쿄 등 도심 지역에서 택시를 이용한 배송을 한시적으로 허용하였는데, 이것이 대박이 나버렸다. 당초 5월 말까지였던 것을 9월 말까지 한차례 연장했다가 10월부터는 영구적으로 규제를 완화한다고 발표하였다. 여객 수요가 주는 대신 음식, 생필품 등의 배송 수요를 택시로도 뒷받침하고, 택시의 가동률도 높이는 1석 2조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금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사 몸값이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다. 택배, 배달대행, 퀵, 용달 등 코로나19로 가정 내에서 더 많이 쿠팡으로 구매하고, 배민으로 시켜먹고, 집에서 눈에 띄는 가구와 가전제품 등의 내구재 구매도 늘어나면서 물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반면, 택시 승객은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영업시간 제한, 해외여행 제한 등의 영향으로 구조적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해외에서도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서도 택시 배송을 합법화하였고, 도시내 물류 수요 폭증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도 택시 배송을 합법화할 명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상황이다. 바이라인 네트워크의 중고거래 택시 배송 실험은 바로 그 필요성을 실증적으로 잘 보여준다.
최근 카카오 T 퀵이 론칭하였는데, 퀵이라고 하면 오토바이 기사를 통해서 회사 서류 정도를 배송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카카오 T 퀵도 기존에 전화로 하던 퀵 거래를 앱과 플랫폼을 이용해서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기획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더 다양한 수요도 카카오 T 퀵의 타깃이라는 것이 관찰된다. 바로 당근마켓의 거래와 같이 개인 간의 물품 배송 수요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가존 택배는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퀵은 왠지 회사 일에 써야 할 것 같다고 생각된다. 카카오 T 퀵이 타깃으로 하는 시장도 바로 이러한 거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물품 배송을 하는 시장이다.
나아가 소위 '퀵 커머스'가 활성화되면, 택배의 익일 배송과 퀵의 당일 배송 시장이 보다 더 뚜렷하게 나누어질 여지도 크다. 배민의 B마트를 필두로, GS 리테일의 요기요 인수, 신세계의 바로고 제휴 소식, 쿠팡의 쿠팡이츠 마트(가제) 진출 등 국내에서도 퀵 커머스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퀵 커머스의 부상은 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유통 최적화로 도심 물류센터에서 가정으로 바로 배송할 수 있는 인프라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소비자들이 유입되어, 주문을 하면 당일에 즉각 배송하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당일 배송의 확대는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장을 보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자가용을 이용해서 마트에 방문하거나, 택시를 이용해서 시장에 가는 일들이 과거보다 더 줄어들 것이란 의미다. 이런 환경에서 택시는 유상 여객 운송에서 유상 화물 운송으로 확장이 불가피 할 것이다. 택시를 시발점으로 여객과 화물의 뚜렷한 구분이 옅어질 가능성이 높다.
1) 중고거래를 위한 딜리버리 수단, 2) 해외의 택시 배송 합법화 추세, 3) 확대되는 당일배송 수요 등의 흐름은 모빌리티를 여객에서 화물로 보다 확장해 나가는 뚜렷한 원동력이다.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전장이 만들어지면서 나올 기업들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앞으로 모빌리티의 주요 화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